[오늘과 내일/권순택]안철수 교수의 ‘투잡’ 생활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27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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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택 논설위원
권순택 논설위원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의 1등 공신은 누가 뭐래도 안철수 교수다. 안 교수는 ‘10·26 서울시장 선거 드라마’에 두 번 ‘카메오’로 출연했을 뿐이다. 백두대간 등산에서 돌아온 박 시장과 포옹하며 통 큰 양보를 한 것과 선거 캠프에 찾아가 ‘응원 편지’를 전달한 것이 전부다.

그런데도 많은 국민은 안 교수가 언제 본격적인 정치를 할 것인지를 궁금해한다. 안 교수는 최근 “인문학은 알아도 정치는 모른다”고 말했지만 그의 행보는 계산된 정치행위로 보기에 충분하다. 그는 어제도 야권통합을 위한 역할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 없다”, ‘정치인 안철수’에 대해서는 “학교 일만 해도 많다”고 답변을 피했다. 그의 말을 믿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를 직접 만나본 것은 ‘안철수 돌풍’이 불기 전인 3월 22일 관훈클럽 초청 포럼 때였다. 그는 ‘직접 정부에 들어가 일할 생각이 없느냐’는 한 언론인의 질문에 “정치가 뭔지 사실 제가 공부해본 적도 없고 잘 몰라요”라고 답했다. 그는 “제일 바람직하지 않은 게 높은 자리에 올라서 아무런 변화도 가져올 수 없는 것”이라며 “혼자 들어가서 아무런 변화도 못 일으키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했다. 최근 행보를 보면 그는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높은 자리에 올라서 세상을 변화시켜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는 추석 직전에 “대통령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고 말했지만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서 여전히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맞설 유력한 예비후보로 나온다. 50일 만에 가능했던 ‘박원순 서울시장 드라마’를 보면 내년 대선에서 ‘안철수 드라마’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법도 없다. 이렇다 할 공직이나 정치 경험이 없는 교수가 단 한 번의 선거로 대통령이 된다면 기네스북에 올라갈 일이지만.

월간지 신동아(10월호)가 안 교수의 발언들을 심층 분석했더니 그는 대기업 삼성 한나라당이 우리 사회문제의 근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신동아는 “안철수가 정치지도자로서 사회의 맥락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젊은 세대가 좋아할 이미지와 인간적 매력을 갖고 있지만 그것이 곧 정치 능력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그가 대통령에게 필요한 외교 안보 등 국정 전반에 걸친 식견과 경험을 갖췄다고 하기는 어렵다.

정치인은 선거를 통해 능력과 비전, 도덕성을 검증받고 성장한다. 미국에는 1960년 이후 존 F 케네디,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등 3명의 40대 대통령이 나왔다. 모두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 10년 이상 정치 경력을 쌓았다. 44세에 대통령에 취임한 케네디는 연방 하원의원 3선과 상원의원 재선으로 16년 동안 정치를 했다. 47세 대통령 클린턴은 아칸소 주 검찰총장을 시작으로 주지사 5선을 거쳤다. 48세에 취임한 오바마도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 8년과 연방 상원의원 4년 등 12년에 걸친 정치활동 끝에 백악관 주인이 됐다. 그런 오바마도 최근 지지율 하락과 관련해 경험 부족 때문이란 말을 듣는다.

안 교수가 정치를 할 생각이라면 지금 교수직을 내놓고 본격적인 정치의 장에 나서도 늦다. 도덕성과 능력 검증을 두려워한다면 정치는 포기하는 게 낫다. 애매모호한 처신으로 교수와 정치인의 투잡(two job) 생활을 즐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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