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납북자 국군포로 송환, 옛 독일방식 가능할까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24일 03시 00분


류우익 통일부 장관이 납북자·국군포로 문제 해결 방식 중 하나로 ‘프라이카우프(freikauf)’ 모델을 제시했다. 프라이카우프는 과거 서독이 동독에 있는 반체제 인사와 정치범을 데려오기 위해 대가를 지급한 방식으로 ‘자유를 산다’는 의미다. 서독은 1963∼1989년 3만3755명을 송환한 동독에 그 대가로 34억6400만 마르크에 해당하는 현물을 건넸다. 대략 1인당 10만 마르크 정도였다. 당시 환율로 계산하면 한 사람당 평균 5300만 원에 해당한다.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실패로 재정 파탄에 빠진 동독이 ‘정치범 장사’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프라이카우프가 성공한 배경이었다. 저항세력이 커질 것을 우려한 동독정부로선 돈도 벌고 사회 불만세력도 솎아낼 수 있는 일거양득이었다. 그러나 이 방식을 남북한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현실 여건이 만만치 않다. 북한은 국군포로·납북자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며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당시 국군포로·납북자를 이른바 ‘특수이산가족’으로 분류해 이산가족 상봉 때마다 4, 5명씩 끼워 넣어 상봉을 주선한 게 고작이다.

설사 남북이 합의하더라도 석유, 귀금속 등 즉각 현금화가 가능한 현물을 보낸 서독 방식은 곤란하다. 서독은 통독 후 에리히 호네커 당시 동독 서기장이 현금화한 프라이카우프 자금의 60%에 해당하는 21억 마르크를 회수했지만 북한은 상황이 다르다. 북의 김씨 왕조는 돈이 생기면 핵무기와 대량살상무기 제조에 쏟아 부었다. 송환 대가로 과도한 몸값을 요구하면 오히려 우리가 궁지에 몰릴 수도 있다.

북한이 저지른 악행(惡行)을 보상하는 것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우리 정부는 이인모 씨(1993년)와 비전향장기수 63명(2000년)을 아무 조건 없이 돌려보냈다. 본인의 의사에 반해 억류된 납북자나 국군포로와 맞바꾸자는 요구를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보낸 것은 큰 실책이다. 북한에는 납북자 517명과 국군포로 500여 명이 생존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6·25전쟁 때 납북된 인사들의 가족 모임은 납북자를 기억하고 송환 노력을 계속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물망초 배지’ 달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북한 요덕수용소에 갇혀 있는 ‘통영의 딸’ 신숙자 씨와 두 딸의 이야기도 우리를 가슴 아프게 한다. 어렵다고 포기부터 해서는 안 된다. 북의 강고한 벽을 뚫고 우리의 형제자매를 데려올 현실적 방안을 찾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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