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성희]뉴욕의 원자력 전도사 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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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3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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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 논설위원
정성희 논설위원
이명박 대통령이 22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원자력 안전 고위급회의 기조연설에서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원자력을 포기할 이유여서는 안 된다”며 원자력을 적극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과 일본이 탈원전으로 가고 있는 반면 한국은 원자력을 강화하겠다는 사실을 국제사회에 선포한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이렇게 화끈하게 원전 지지를 천명한 나라는 프랑스 말고는 우리밖에 없는 것 같다.

후쿠시마 사고 수습되지 않았는데

자원고갈, 기후변화, 성장에 대한 요구를 감안할 때 원자력의 불가피성은 극단적 환경론자 빼고는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내년 3월 핵안보정상회의를 주최하고 2009년 아랍에미리트에 대한 원전 수출을 성사시킨 이 대통령으로서는 세계 5위 원자력강국이자 원전수출국으로서의 이미지를 위해 확실한 메시지를 줄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녹색성장을 주창한 정부로서 역대 어느 정부보다 신재생에너지 투자를 많이 했지만 성과가 금세 나오지 않는다는 점도 원자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의 하나다. 그렇지만 국민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할 원전 확대 문제를 너무 성급하게 결정한 것은 아닌지 아쉬움은 남는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원자력에 대한 불안감이 최고조에 이른 시기다. 후쿠시마 사고가 아직 수습되지 않았고 일본 국민은 여전히 방사능 공포에 떨고 있다. 일본은 2030년까지 14기의 원전을 추가 건설키로 했으나 간 나오토 전임 총리가 백지화했다. 사고 이후 일본은 안전점검 등을 이유로 54기의 원전 중 43기의 가동을 중단했으나 일본 국민은 전력난을 견뎌내며 탈원전 행보를 보여주었다. 19일 도쿄 메이지공원에서는 6만여 명이 반원전 시위를 벌이며 탈핵을 촉구했다. 일본을 위시한 각국 동향과 국민여론을 보아가며 결정해도 늦지 않았을 것이다.

올해 6월 아사히신문이 일본을 비롯해 한국 미국 중국 독일 등을 상대로 원전 찬반 비율을 조사한 결과 일본은 찬성(34%)보다 반대(42%)가 높았고 우리나라는 찬성(44%)과 반대(45%)가 비슷했다. 지금은 1970, 80년대처럼 원전 문제를 대통령의 리더십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시절이 아니다.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의 말대로 원자력은 고도의 기술공학 분야이지만 사회적 수용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는 복합적 사안이다.

무엇보다 원전 지지를 표명하기 이전에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사용후 핵연료 처리가 당장 발등의 불이다. 원전수조에 임시 저장되고 있는 사용후 핵연료는 2016년부터 포화상태에 들어간다. 후쿠시마 원전 4호기는 저장수조에 있던 사용후 핵연료 노출로 수소 폭발이 일어났다. 사용후 핵연료를 직접 처분할 것인가, 재활용할 것인가 하는 결정은 그만두더라도 중간저장 방안까지 차기 정권에 미루는 것은 무책임한 폭탄 돌리기다.

지금은 국민에게 절전 요구할 때

단전 사태가 난 지 얼마 안 되는 시점에 원전 확대를 언명한 것은 국민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전력 문제를 푸는 해법은 전기요금 정상화를 통한 절전 유도 등 수요관리에 있는데 원전 확대는 싼 전력을 무한 공급하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수명을 다한 원전을 해체하는 계획이 없는 것도 문제다. 음식을 먹었으면 배설을 해야 하는 것처럼 원전을 가동했으면 해체 방안도 갖고 있어야 한다.

천문학적 금액의 원전 해체 비용까지 감안하면 원자력 발전단가가 결코 싸다고 할 수는 없다. 발전단가의 적정성, 전력수요 예측의 허실을 따져보고 원자력 화석연료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얼마로 할 것인가를 담은 에너지기본계획을 새로 마련해 그 바탕에서 원전 확대를 결정해야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 지금은 국민에게 절전에 따른 고통을 요구하는 게 먼저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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