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하태경]북한인권 개선에 국경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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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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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
9월 8일 저녁 일본 도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정문 앞에 60여 명의 색다른 시위행렬이 나타났다. 그동안 조총련 앞에서 북한 핵, 인권, 납북자 문제에 항의하는 시위가 간간이 있었으나 모두가 일본인 또는 한국인들이었다. 그런데 이날 시위는 무지개 빛이었다. 미국 호주 캐나다 유럽 동남아 남미 등 거의 모든 대륙에서 사람들이 모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 정치범수용소에 갇혀있는 “내 딸 혜원이, 규원이를 돌려 달라”고 절규하는 오길남 씨가 있었다.

총련 앞의 이 광경은 지난 13년간 북한인권운동에 매진해온 필자에게도 감격스러웠다. 그동안 한국 미국 일본 정도만 적극적으로 나섰던 정치범수용소 문제가 이제 전 세계인들의 이슈가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총련 앞의 이 사람들은 ‘북한 반인도범죄 철폐를 위한 국제연대(International Coalition to Stop Crimes against Humanity in NK)’를 발족하기 위해 일본에 온 것이다. 이 국제연대 조직에는 15개국 40여 개 단체가 참여했다. 정치범수용소 해체를 핵심 목표로 하는 ‘북한 반인도범죄 철폐’ 깃발 아래 단결한 것이다. 이 연대조직을 필자가 대표로 있는 (사)열린북한이 주도해 만들었기 때문에 기쁨은 두 배나 컸다.

이 연대조직 결성에는 두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하나는 국제 인권운동의 ‘빅 3’로 불리는 국제앰네스티, 휴먼라이츠워치, 국제인권연맹(FIDH)이 모두 참여한 것이다. 세 단체 중에 국제앰네스티와 휴먼라이츠워치는 국내에도 많이 알려져 있지만 국제인권연맹은 생소할 것이다. 국제인권연맹은 1922년 창설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제인권단체로 100개국 164개 단체가 가입돼 있다.

국제앰네스티의 참여도 주목할 만하다. 앰네스티는 한동안 북한인권 문제보다는 한국인권 문제에 치중하는 등 균형을 갖추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2008년 한국 광우병 시위 과정에서의 인권 침해를 거론한 것이 대표적 예이다. 그런 앰네스티가 2010년 새 사무총장을 선임한 뒤 변화하기 시작했다. 앰네스티는 창설 50주년이 되는 올해부터 북한인권 문제를 최상위 의제로 설정했다. 올 5월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대한 첫 공식보고서를 발표했다.

또 이 연대조직은 북한인권 운동을 한 단계 전진시킨 역사적 의미가 있다. 그동안 북한인권 운동은 북한인권 실상을 알리는 선전 중심의 활동을 해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유엔에서 북한 정치범수용소 조사위원회를 구성한다는 아주 구체적인 목표를 내걸었다.

그동안 유엔은 매년 북한인권 개선 결의안을 통과시켰으나 단순히 선언적인 내용에 그쳤기 때문에 북한이 큰 압박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고 북한이 실질적인 압력을 받을 수 있도록 우리는 유엔 산하 ‘정치범수용소 조사위원회(Commission of Inquiry)’ 구성 운동을 전개하기로 한 것이다.

과거 수단, 캄보디아 등에 대한 유엔 조사위원회가 구성된 선례가 있다. 또 최근에는 미얀마도 자국의 반인도범죄에 대한 유엔조사위원회 구성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런데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내에서 자행되고 있는 고문, 살인, 강제노동, 연좌제 등은 그 어느 나라보다 심각하기 때문에 유엔조사위원회 구성 운동이 충분히 명분이 있다.

최근 필자는 ‘민주주의는 국경이 없다’는 책을 펴냈다. 우리는 9월 8일 총련 앞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은 정말 국경이 없는 보편적인 가치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북한 반인도범죄 철폐 국제연대’ 발족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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