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암표상 손에 먼저 들어간 추석 기차표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9일 03시 00분


본가와 처가가 대구인 이모 씨는 명절 KTX 승차권 예매일마다 부산을 떨지만 매번 허탕을 친다. 예매 당일은 코레일 홈페이지 접속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전날 밤에 미리 접속해 원하는 시간대의 승차권 예약 버튼 위에 커서를 놓아둔다. 예매가 시작되는 오전 6시부터 버튼을 수없이 클릭해 보지만 화면엔 표가 다 팔렸다는 메시지만 뜬다. 결국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하릴없이 빈 좌석이 나기를 기다리며 애를 태운다.

추석 KTX 승차권 2000여 장을 인터넷으로 사들여 웃돈을 받고 판 승차권 판매대행업자 등이 적발됐다. ‘암표상’들은 코레일 멤버십 최고등급인 ‘다이아몬드’ 회원이 명절 승차권 예매기간보다 하루 먼저 예매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했다. 이들은 지인의 개인정보로 ID를 여럿 개설한 뒤 승차권 판매대행업을 활용해 다이아몬드 등급을 만들고 표 사재기를 했다. 이 씨처럼 새벽잠 설쳐가며 컴퓨터와 씨름하거나 창구 앞에 긴 줄을 서는 이들에겐 ‘공정한 기회’를 빼앗는 짓이다.

누구보다 암표상의 잘못이 크지만 코레일도 관리 책임을 져야 한다. 한 컴퓨터에서 여러 ID를 사용하거나 같은 신용카드로 대량 구매하는 경우를 감시하는 장치가 있다면 사재기를 막을 수 있다. 근본적인 문제점은 멤버십 혜택에 있다. 다이아몬드 등급이 되려면 6개월간 15만 포인트를 적립해야 한다. 월평균 5회씩 서울∼부산을 왕복해야 얻을 수 있는 점수다. 여행을 많이 다니는 부유층, 출장이 잦은 비즈니스맨이라도 취득하기 어려운 조건이다. 이 등급 회원 모두에게 일률적으로 명절 승차권 하루 전 예매 특혜를 주는 것도 불합리하다. 실적이 좋은 회원에겐 항공사 마일리지처럼 누적 포인트로 승차권을 구매하게 하거나 제휴사 서비스 이용 혜택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귀성객이 1년에 딱 두 번, 설과 추석에나마 좀 더 편하게 기차표를 구할 수 있도록 코레일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코레일은 열차 운행과 철도 안전 관리 등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승차권 판매 같은 소프트웨어에서도 승객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