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송우혜]우리 사회에 어떤 인물이 필요한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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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혜 객원논설위원·소설가
송우혜 객원논설위원·소설가
어느 날 불교도인 친구가 말했다. “내가 아는 스님 이야기가 독경(讀經)에도 기교가 있다는 거야. 본래 독경은 흐르는 물같이 담담하게 하는 것이 정도라거든. 그런데 절 살림에 돈이 필요하면 일부러 독경을 슬프게 한다는 거야. 그러면 담담하게 독경했을 때보다 시줏돈이 훨씬 더 많이 들어온다는군.” 그 이야기는 내 마음 어딘가를 쿡 건드렸다. 왜 담담한 독경소리를 들을 때보다 슬픈 독경소리를 들을 때 시줏돈을 더 많이 내게 되는 것일까. 슬픔이 담담함보다 마음의 문을 더 크게 열게 하는 힘이 있는 것일까.

얼마 전에 책을 읽다가 이런 구절을 보았다. “사람들에게 장의사 건물 앞이나 공동묘지가 보이는 곳에서 자선단체에 기부하도록 하면 기부금이 훨씬 더 많이 걷힌다는 연구 결과도 나온 바 있다.” 그 이야기 역시 일말의 진리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죽음을 의식할 때 세상을 향해 좀 더 관대하고 열린 마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공감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나날의 삶에서 아등바등 각박하게 굴면서 서로 양보 없이 다투는 것은 눈앞의 일만 들여다볼 때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우리 삶이 안고 있는 슬픔, 유한함, 한시성…. 그런 것들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인식할 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다툼과 증오가 줄어들고 모두의 삶이 한결 편편해질 것 같다.

‘인물’기근 반영하는 안철수 현상

우리가 삶에 대해서 기대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각자 처한 상황이나 입장에 따라서 여러 가지 대답이 나올 것이지만, 한 가지 확언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진정한 의미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이 가장 큰 목표가 되리라는 점이다.

우리가 ‘행복함’을 느끼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걸 검증하는 방식의 하나로서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롤 모델이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 정계는 ‘안철수 신드롬’으로 공황 상태다. 그간 각종 선거를 전제한 여론조사 수치의 미세한 오르내림에 일희일비하던 정계 인사들에게 안철수 신드롬은 핵폭탄과 같은 충격일 것이다. 그런데 안철수 신드롬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현재 느끼고 있는 행복지수와 불행지수를 함께 드러내는 지표의 하나라는 점에서 크게 주목할 만하다.

안철수 신드롬이 행복지수의 지표가 된다는 것은 그만치 격렬하게 열광할 수 있는 인물을 우리 사회가 갖고 있다는 것을 가시적으로 보여준 점을 평가했을 때 나오는 이야기다. 동시에 안철수 신드롬이 불행지수의 지표가 된다는 것은 그가 정치인으로서 검증된 인물이 전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처럼 뜨거운 열광을 불러일으킨 사태가 지닌 맹목성을 생각할 때 나오는 이야기다.

학자로서 기업인으로서 교육자로서 안철수는 보기 드문 양질의 인재로 보인다. 그러나 정치인으로서의 안철수는 문제가 있다. 누구든 공직을 지원할 때는 그에 걸맞은 진지함과 투철한 사명감과 역사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가 서울시장 출마 문제를 놓고 최근에 보인 행보는 그렇지 않았다. 내심 다른 계산이 따로 있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현재 드러난 외형으로는 가볍고 즉흥적이다. 그러나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그의 가벼움과 즉흥성에까지도 열렬하게 환호하고 있는 것이 현재 우리 사회 전반의 정서이다. 우리 사회가 그간 얼마나 ‘인물’에 굶주려 왔는지를 아프게 돌아보게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하고 우리 사회를 한 걸음 더 진전시킬 수 있는 진정한 롤 모델은 과연 어떤 인물일 것인가? 그런 인물을 꼽는 조건으로 ‘각자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전제라는 것을 생각할 때, 우선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메리놀 수도회 소속의 미국인 에드워드 J 휠런(한국명 안예도·77) 신부님이다.

높이 우러를 등불 갈망한다

한국에 온 지 40년 되는 안예도 신부님은 평생을 바쳐서 장애인을 돌보는 사역을 하고 있다. 그런데 안 신부님과 연관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장애인들은 움직임이 부자유스럽기 때문에 식사할 때 밥알을 많이 흘린다. 그런데 안 신부님이 그 밥알들을 모두 모아서 잡수시더란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장애인의 보호자들이 깊이 감동하고 슬퍼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듣는 이들도 눈물을 흘렸다. 장애인을 자신과 똑같이 여기는 진정한 인류애와 한 알의 밥풀이라도 진심으로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인물이 그 무서운 진정성으로 세상을 떠받치고 있기 때문에 오늘도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힘과 정성이 모자라서 그런 인물의 삶을 그대로 따라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높이 우러르고 살아갈 만한 인물의 삶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밝은 등불을 켜둔 것 같다.

송우혜 객원논설위원·소설가 swh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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