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학벌주의 시대에 ‘女商’ 간판 85년 지킨 서울여상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7일 03시 00분


1926년 개교한 서울여자상업고교는 자타가 공인하는 여성 직업교육의 산실(産室)이다. 1000여 명의 졸업생이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 금융권에서 일한다. 시중은행 여성 지점장 3명 중 1명이 이 학교 졸업생이다.

많은 전문계고(옛 실업고)가 상고와 공고의 이름을 버리고 미디어고 인터넷고 정보고 등으로 개명(改名)할 때도 서울여상은 여상(女商) 간판을 바꿔 달지 않았다. 전문계고 졸업자의 대학진학률이 1990년 7.3%에서 2010년 71.1%로 치솟을 때도 서울여상은 ‘취업중심 학교’의 원칙을 고수했다. 서울여상도 입학할 때는 압도적 다수가 대학 진학을 원했지만 졸업할 때는 70%가 취업을 선택했다. 지난해 서울여상 졸업생 가운데 대학진학 희망자를 뺀 175명 가운데 98.3%에 해당하는 172명이 취업에 성공했다. 전국 692개 전문계고 평균 취업률이 20%를 넘지 못하는 것과 비교해 보면 엄청난 실적이다.

서울여상은 한때 중학교 성적이 상위 5% 이내에 들어야만 지원할 수 있을 정도로 우수한 학생들이 몰렸다. 최근에는 이런 추세가 주춤해졌지만 학교 측은 혁신을 거듭했다. 2005년 금융 및 국제통상 e비즈니스 분야를 특성화하는 방식으로 응전(應戰)했다. 다른 전문계고가 대입 진학상담에 매달릴 때 IT 인력 훈련을 위한 인터넷 초고속 통신망을 깔았다. 서울여상이 제25회 인촌상 교육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것은 이런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고교생의 대학진학률이 80%를 넘고 입시경쟁 과열로 사교육비 고통이 커지고 있다. 대학을 졸업해도 대졸자가 원하는 일자리가 근본적으로 부족해 백수가 넘쳐나고 있다. 이로 인한 사회적 낭비가 심각하다. 서울여상은 학벌주의 풍조를 극복하는 모델로서 시사하는 바가 많다. 고졸자들이 제대로 된 직업교육을 받게 되면 괜찮은 직장에 취업이 가능하고 사회에 진출해서도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55개 공공기관과 준정부기관 55개의 지난 1년간 채용실적을 조사한 결과 2375명 가운데 전문계고 출신이 전체의 1.1%인 26명에 그쳤다. 전문계고 출신으로 우리 사회에서 일자리 잡기가 결코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정부와 기업은 고졸자에 대한 취업을 더욱 확대하고 능력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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