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상훈]건강보험 바로 서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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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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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한국 쇼핑몰엔 없지만 미국 쇼핑몰엔 있는 것. 쇼핑하면서 의료서비스도 받을 수 있는 ‘워크인(Walk-in) 클리닉’이다. ‘리테일(Retail) 클리닉’이라고도 부른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8월 기준으로 33개 주에서 982개가 운영되고 있다. 예방접종과 피부 관리, 상담 등 비교적 간단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용자에게 왜 병원으로 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30대 중반의 한 남성은 “의료보험이 없으니…”라며 말을 흐렸다. 40대 초반의 여성은 “병원 진료비를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워크인 클리닉의 이용료는 일반 병원의 20∼40% 수준이다. 1차 의원 역할을 하는 셈인데, 간호사들이 서비스를 제공한다.

미국에서 의료보험 비가입자는 2007년 2500만 명에서 2008년 4630만 명, 2009년 5070만 명으로 늘었다. 이 사람들에게는 절단된 손가락 봉합에 6000만 원이 든다는 영화 ‘식코’의 줄거리가 현실이다. 워크인 클리닉은 의료서비스 혜택을 누릴 수 없는 이들이 유일하게 이용할 수 있는 ‘의료기관’이다.

취재 도중에 떠오른 게 우리의 국민건강보험이었다. 재정 확보라는 숙제가 있지만, 적어도 미국과 같은 의료 사각지대가 없는 것은 이 제도 덕이다. 미국인 교수가 “한국의 제도가 부럽다”고 말할 때는 뿌듯하기까지 했다. 물론 세계가 부러워하는 제도로 남으려면 보완작업을 꾸준히 해야 할 것이다.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개선하고, 포괄수가제도를 도입하며, 병원 규모별로 본인부담금과 수가를 달리하는 작업도 이런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더불어 건강보험공단 이사장도 전문적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전문 능력이 이사장의 자격 요건은 아닌 것 같다. 이사장 자리는 늘 정치적 안배로 결정됐다. 세계 최고의 제도라면서 정작 수장을 뽑을 때는 전근대로 돌아간다. 이러니 ‘건보공단 이사장=낙하산’이란 우스갯소리가 들려와도 이상하지 않다.

가령 2006년 8월 노무현 대통령은 이재용 전 환경부 장관을 건보공단 이사장에 임명했다. 그는 5·31지방선거에서 대구 시장에 출마했다 낙선했다. 누가 봐도 ‘보은 인사’다. 정형근 현 이사장 또한 18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뒤 이사장이 됐다.

이번에도 조짐이 이상하다. 보건복지부와 건보공단에 따르면 정 이사장은 다음 달 18일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다. 벌써 누구누구가 이사장이 될 거다, 누가 MB로부터 낙점됐다, 누구는 찍혔다라는 수군거림이 들려온다. 개각 과정에서 ‘물 먹은’ 인사를 앉힐 거라는 얘기도 나온다.

사태가 이렇게 된 데는 청와대와 복지부의 책임이 크다. 정 이사장이 사임 의사를 밝혔는데도 후임자를 적극 물색하지 않았다. 차기 이사장을 선출하기 위한 절차도 밟지 않았다.

건보공단의 수장을 뽑는 절차는 상당히 복잡하다. 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한 뒤 공고를 하고, 후보자 심의를 거쳐 최종 후보자를 결정한다. 복지부 장관이 그 후보를 추천하면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 절차를 다 밟으려면 최소한 2개월이 걸린다.

정작 현실은 위원회도 구성하지 못했다. 코앞으로 다가온 국정감사는 수장 없이 치르게 될 확률이 커졌다. 기획상임이사가 이사장을 대행한다지만 업무 공백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전문성을 갖춘 적임자를 찾느라 시간이 걸리는 거라고 믿고 싶다. 내 사람을 챙기기 위해 자리를 비워두려는 ‘얄팍한’ 시간 끌기가 아니라고 믿고 싶다.

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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