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승철]‘왕재산’ 간첩사건, 안보의식 일깨우는 계기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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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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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철 북한개혁방송 대표
김승철 북한개혁방송 대표
‘북한 주민’에서 ‘남한 주민’으로 신분이 바뀐 덕분에 누리고 있는 많은 행복 가운데 빠질 수 없는 것이 TV 드라마 보는 재미다. 한국에 정착한 초기, 드라마 ‘모래시계’와 ‘용의 눈물’을 긴장과 흥분 속에 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한번 빠지면 일에 지장이 있어 조심스럽던 나는 요즘 ‘공주의 남자’에 푹 빠져 있다. 사극을 통해 역사를 배우고 인간의 본능과 삶, 권력욕의 사악함도 보게 된다. ‘공주의 남자’는 김종서와 수양대군의 생사를 건 권력투쟁을 실감나게 다루고 있다.

왕위 찬탈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수양대군을 보며 절대권력의 욕망이 얼마나 무서운지 다시금 깨닫는다. 아마 김정일도 저랬으리라, 아니 수양대군보다 더 잔인하고 무자비했으리라. 그러지 않았다면 어떻게 300만 명을 굶겨 죽일 수 있었을까. 2000년을 전후해 2만3000여 명을 처형한 피의 대숙청이었던 심화조 사건도 김정일의 지시로 시작됐다.

‘공주의 남자’에서 수양대군은 김종서를 살해하고는 잔인한 미소를 띠는 장면이 나온다. 회의장에서 환호하는 관중을 향해 짜증스러운 모습을 보이던 김정일 모습을 연상시켰다. 북한정권은 연평도에 방사포 공격을 가해 민가를 불태우고 군인과 민간인을 살해하는 천인공노할 도발을 저지르고는 남측에 책임을 돌리며 ‘정확히 명중 타격했다’고 떠들었다. 그때도 김정일은 잔인한 미소를 띠었으리라.

북한에서 살았던 필자도 어떻게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하고 놀랐다. 도저히 할 수 없는 만행을 버젓이 저지르는 게 북한 정권이다. 잔인무도한 이웃을 두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탈북자들은 한결같이 대한민국이 너무 점잖고 순해서 북한이 도발을 반복한다고 걱정한다.

돌이켜 보면 남북관계는 항상 북한 정권의 의지와 행동에 끌려 다녔다. 우리는 선의를 토대로 북한을 동족으로, 화해의 대상으로 대했지만 북한 정권은 시종일관 우리를 적대하며 도발과 대화를 반복했다. 북한당국이 도발하고 싶으면 도발하고 대화하고 싶을 때 대화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남북관계였다.

우리는 북한의 테러나 무력 도발에 대해 기껏해야 사과를 요구하는 정도의 제한된 선택권을 행사해 왔다. 북한 정권은 자신들이 저지른 도발과 범죄의 사과에도 대가를 요구할 정도로 무례했다. 이런 북한의 도발에 온 국민이 일치단결해 대응해야 하지만 반대로 내부적으로 엄청난 갈등을 초래했다.

그럴 때마다 김정일은 소름끼치는 쓴웃음을 지었으리라. “조금만 더 흔들고 내부에 불신과 대립을 조장하면 대한민국을 먹을 수 있어.” 이번에 적발된 ‘왕재산’ 간첩단 사건에서 보듯이 수많은 간첩과 북한 정권을 추종하는 종북세력들이 김정일의 적화통일 야욕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왕재산 간첩단 사건 핵심 관련자들이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한다. 간첩죄는 인정하되 자백은 하지 않겠다, 즉 김정일을 배신하지는 않겠다는 의미인 듯하다. 그들은 300만 명이 굶어 죽었다는 진실, 수십만 명이 정치범수용소에서 돼지보다 못한 파리 목숨처럼 죽어간다는 진실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을까.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절규하는 탈북자들의 증언에 그들도 피식거렸을까?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왕재산 간첩단 사건 관련자들은 가난과 빈곤, 민족 대학살을 대한민국에까지 확대하는 김정일의 명령에 충실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국민은 조용하다. 민주노동당은 오히려 ‘정치적 기획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안보가 백척간두(百尺竿頭)에 놓여있음을 보여준다.

2007년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이 진행될 때 수용소 출신 탈북자는 “다시는 수용소에 들어가서 죽고 싶지는 않다”며 제3국으로 떠났다. 대한민국은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다. 자주 발표되는 간첩사건, 양심을 버린 수많은 종북세력들을 보면서 이번 ‘왕재산’ 간첩단 사건이 무뎌진 안보의식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간첩들을 검거한 국가정보원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김승철 북한개혁방송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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