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태명]누구를 위한 주파수 경매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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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명 성균관대 정보통신공학부 교수
정태명 성균관대 정보통신공학부 교수
4세대 이동통신 주파수 대역을 확보하기 위한 이동통신 사업자 간의 경쟁이 치열하다. 4455억 원에서 시작된 1.8GHz대의 주파수 경매 가격이 9950억 원까지 치솟았고, KT의 유예 신청으로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상한가 없는 ‘동시 오름 입찰방식’의 경매가 속개되면 경매 가격이 얼마까지 상승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승자의 저주 뻔한 4G 통신 경쟁

이미 독일의 모빌컴과 그룹3G, 이탈리아의 IPSE2000 등이 경매 가격의 부담을 이겨내지 못하고 사업을 포기한 사실을 감안할 때 이번 경매의 과열로 ‘승자의 저주’가 현실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요금 인하를 약속한 이동통신사들이 주파수 경매대금 압박으로 인프라 투자를 줄이거나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드웨어나 인프라에서의 이익이 소프트웨어나 콘텐츠의 새로운 미래로 전이되는 과정에 차질을 빚을 것이 틀림없다.

이런 결과가 초래된다면 합리적인 경매 가격을 예상하고 과당경쟁에 대한 대비책 없이 경매를 시행한 정부는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물론 치킨게임에 몰두하다 미래를 읽지 못한 SKT와 KT에도 책임의 일부를 물어야 한다.

그러나 책임론으로 시간을 보내기에는 4세대 이동통신은 너무 중요하다. 당장이라도 정부와 이동통신사는 머리를 맞대고 지혜롭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우선 브레이크 없는 기차처럼 달리는 경매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정부는 과열된 주파수 경매가 이동통신 시장의 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 만일 약간의 의혹이라도 발견되면 지체 없이 실수를 인정하고 합법적으로 경매를 중단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처음 시행하는 정책의 실수는 용납되지만 시장을 어지럽히는 정책은 산업과 미래를 동시에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자원인 주파수를 둘러싼 특혜 시비도 불식하고 시장경제 원리에 의해 필요한 사업자에게 주파수를 부여하기 위해 경매제도를 선택한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정책이 무절제하게 시행될 때를 대비한 방안이 마련돼 있지 않았다는 것은 문제가 된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현재의 경매 가격을 기준으로 사업계획을 평가해서 사업자를 선정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차제에 주파수 경매로 인한 수입을 어떻게 국민과 소비자에게 환원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경매 수입은 정확히 말하면 소비자가 내는 것과 다름없다. 이 수입이 소비자의 권익과 품질 향상을 위해 투명하게 쓰일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해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특히 낙찰 기업이 경매의 폐해로 부당하게 치르는 비용만큼은 그 기업에 보상을 해 소비자에게 환원되도록 조치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동통신사들의 인프라 투자 위축 우려를 없애고 소비자의 가계부담 상승 가능성도 제거해야 한다. 정부는 이익을 좇는 집단이 아니라 성숙한 정책으로 신뢰받는 대상이어야 한다.

국민부담 줄일 새로운 선정방법을

정부는 이번 경매 과정을 계기로 우리나라 이동통신 시장이 국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주파수 분배 및 할당에 대한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전략을 세워 시행해야 한다. 정부의 실수로 이동통신 시장에서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도 있고, 정부의 현명한 정책으로 소비자를 위한 공정한 경쟁체제와 이동통신사 육성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정책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는 척도는 소비자의 만족도 향상과 국가 경쟁력의 확보일 것이다. 이번 문제를 현명하게 처리하고, 정부의 성숙한 정책으로 국민의 권리가 보호되고 국가경제가 발전한다는 평가를 받기 바란다.

정태명 성균관대 정보통신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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