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경희]국고 3000억원을 대학끼리 나눠먹게 하겠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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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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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교육복지부 기자
이경희 교육복지부 기자
교육과학기술부가 3000억 원 규모의 대학재정 지원사업을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넘길 방침이다. 대교협은 4년제 대학 200곳을 회원사로 하는 민간 협의체다.

4년제 대학을 위한 교과부의 재정지원 사업은 크게 2가지다. 교육여건 및 성과가 우수한 대학을 선정하는 교육역량강화사업, 잘 가르치는 대학을 대상으로 하는 ‘학부교육 선진화 선도대학 지원사업’이다.

두 사업에 들어가는 예산은 올해 3020억 원이다. 이를 대학이 알아서 나눠 갖도록 한다는 것으로, 마치 시험을 본 학생들에게 스스로 채점을 하라고 지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교과부 실무자는 문제가 없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예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교육역량강화사업은 신입생 충원율과 졸업생 취업률, 외국인 전임교원 비율 등 9개의 객관적인 지표에 따른 포뮬러 방식으로 지원대상을 결정하므로 어디서 맡든 부정의 소지가 없다”고 자신 있게 얘기했다.

하지만 이는 단견이다. 대교협은 전국에 있는 모든 4년제 대학의 협의체이지만 서울 주요대학 총장 위주로 구성되는 이사회의 입김이 세다. 지원대상을 선정할 때는 객관적 지표를 활용하지만 반영비율은 조정이 가능하므로 일부 대학에 유리하게 바뀔 수 있다.

탈락 대학을 선정하는 사후 평가는 교수 중심의 심사위원단이 맡는다. 엄격한 심사보다는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온정적 심사로 흐를 우려가 있다.

충북 A국립대 관계자는 “서울 소재 대학과 지방 대학, 학교의 규모에 따라 평가지표를 보는 기준이 다르니 갈등이 불가피하다”며 “서울 주요 대학 위주로 사업이 운영될 가능성이 높고, 이렇게 퇴면 극단적으로 대교협에서 탈퇴하는 대학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객관적 지표가 아니라 정성평가의 비중이 50%를 차지하는 학부교육 선진화대학 지원사업은 더욱 우려되는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교육과정 운영계획 같은 항목은 서류 및 방문 심사를 하는 위원의 주관이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예산 배분이라는 중요한 권한을 대교협에 넘기려는 교과부의 모습을 보면 등록금 인하와 관련해 압력을 받는 대학을 달래려는 느낌이 든다. 대교협은 지역, 규모, 유형에 따라 대학마다 너무 차이가 나서 한목소리를 내기 힘들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런 단체에서 국고 3000억 원을 직접 나눈다면 온갖 잡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적절하지 못한 기준으로 지원대상을 정할 경우 책임을 묻기 어려운 면도 고려해야 한다.

이경희 교육복지부 sorimo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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