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EBS 배짱 장사-엉터리 교재, 공교육 망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6일 03시 00분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대거 반영된다는 EBS 교재를 공부하던 수험생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EBS는 ‘수능특강 고득점 외국어영역 330제’ 교재에서 64건의 오류가 나왔다며 “5월과 6월 이 책을 산 사람들은 새로 제작한 ‘정답과 해설’ 책자를 서점에서 받아가라”고 밝혔다. 이 교재만이 아니다. EBS 홈페이지에는 수시로 ‘교재 정오표’(틀린 문제와 답을 바로잡은 내용)가 올라온다. ‘고득점 언어영역 300제’의 경우 6월 16일부터 7월 26일까지 잘못된 문제와 답이 16개 게시돼 있다. 엉터리 교재로 인해 수험생들의 혼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EBS는 어제 “교과전공 대학교수를 집필진에 영입하고 수능 출제방식인 합숙형 집중검토 시스템을 도입해 교재 품질을 개선하겠다”며 사과문을 올렸다. 그러나 재발 방지 약속을 얼마나 지킬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교육정책 목표를 ‘사교육비 줄이기’에 두어 EBS가 ‘공교육의 안방’을 차지하게 만든 이명박 정부의 교육철학에 근본적 문제가 있다.

이 대통령은 올해 2월 수능 대책을 보고받고 “EBS 방송 강의가 시험에 실질적으로 연계되도록 하라”고 주문했다. 이후 교사들은 교과서 대신에 EBS 교재로 학원 식 문제 풀이를 하고, 학생들은 문제와 답만 외우는 식으로 학교는 EBS 교재 암기 장소가 됐다. 주교재가 EBS 교재로 획일화하면서 교사는 창의적 수업을 할 필요가 없어졌고, 수준별 수업도 흐지부지되고 있다. 공교육이 더 황폐해졌다. EBS 교재만 달달 외워 수능을 치른 학생들이 세계를 무대로 뛰고 창조적 도전정신에 불타는 ‘G20 세대’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다고 사교육이 줄어든 것도 아니다. 정부가 ‘쉬운 수능’을 공언하는 바람에 수험생들은 내신과 논술 준비를 위해 학원으로 더 몰렸다. EBS는 수능 연계에 따라 지난해 교재 판매로 1173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정부가 EBS에 독점 사업을 보장해줌으로써 ‘배짱 장사’를 하게 만들었다. 고교 참고서를 만드는 다른 출판사들은 매출 감소로 울상을 짓고 있다.

교육정책의 기본은 공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이어야지 사교육 잡기가 돼선 안 된다. 수능은 ‘주입식 암기식 사교육으로는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없도록 출제한다’는 대원칙에 따라 학생들이 대학에서 공부할 능력을 파악하는 시험으로 돌아가야 한다. 교육당국은 EBS 연계 수능 정책이 왜곡시키는 ‘암기 공교육’의 폐해를 더는 외면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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