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이나미]‘하의 실종’ 패션 읽기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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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미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장
이나미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장
전남 장흥에 누드삼림욕장이 생기고, 노출이 심한 옷이 성폭행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라는 시위가 있을 정도로 사회가 개방적으로 변하고 있지만 이른바 ‘하의 실종’ 패션이 불편한 사람들도 여전히 있다. 사람마다 문화마다 시각이 다르기 때문에 노골적인 음란성과 노출증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건 쉽지 않다. 노출증은 부적절한 상황에서 자신의 성기와 벗은 몸을 드러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위라고 의학적으로 정의하지만, 과연 무엇이 음란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상황에 따라 간단하게 정의하기 힘들다. 예컨대 아프가니스탄 같은 보수적 아랍 국가에서 여성들이 다리를 드러내고 다니면 음란한 여자로 큰 벌을 받지만 아마존이나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가슴이나 엉덩이를 노출해도 뻔뻔하다는 평가를 받지는 않는다. 구한말 한국 여성들이 젖을 먹이느라 가슴을 드러낸 것을 보고 선교사들이 음란하다고 기록했지만 당시 한국인에게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옷차림이었을 뿐이다. 요즘 유행하는 이른바 하의 실종 패션도 보수적인 노인 눈에는 불쾌감을 주는 음란패션이지만 대부분의 젊은이 눈에는 그저 편하고 멋있는 유행이다.

수십 년 전 미니스커트에 대해 뜨거운 논의가 있었고 최근에는 배꼽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설왕설래가 있지만 마치 웃옷만 입은 듯 착각하게 만드는 하의 실종 패션은 한국인의 노출에 대한 또 다른 태도와 사회심리적 변화를 읽게 한다. 아랫도리를 입지 않았다는 느낌과 어감이 주는 도발성에는 하드코어 포르노적 상상력이 범람하는 우리의 일상이 담겨 있다. 즉, 사람은 이제 어떤 성의 담론과 충격적인 이미지에도 별로 당황하지 않는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감히 입에 올리지 못하던 ‘섹스’라는 단어는 어느덧 ‘섹시하다’가 칭찬이 되면서 그저 그런 상투어가 되고 말았다.

젊은층엔 편하고 멋있는 유행

하의 실종 패션도 ‘꿀벅지’라는 단어처럼 애초에는 도발적인 성적 측면이 강했을 터이지만 어느 순간 그 유혹의 힘을 잃고 흔하고 뻔해 보이기까지 하다. 모든 욕구는 적당한 억압과 금기가 있어야 고조되기 마련이어서 검열이 없는 대담한 옷차림에서는 성적 유혹의 힘이 빠져나간다. 야한 옷이 성폭행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는 시위대의 주장이 틀린 말이 아닌 것이다. 몇 겹의 속곳을 껴입은 한복패션의 부녀자나 히잡으로 무장한 아랍권 여자들도 성폭행 피해자가 될 수 있지만, 반대로 누드로 다니는 해변이나 삼림욕장에서 성폭행 사건이 더 많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강한 자극을 계속 받으면 우리 육체의 반응은 점점 약해진다. 지나치게 단 음식을 계속 먹거나 포르노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욕구는 사라지고 결국 불쾌감만 남는 이치다.

그래서 하의 실종 패션을 사냥꾼의 원형적 기억과 본능을 가진 남성을 유혹하는 수동적인 여성의 성적 도구와 무기가 아니라 ‘미니멀리즘’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즉, 기왕이면 가능한 한 간단하고 편하고 시원하게 살자는 마음이다. 패션이란 원래 전통을 깨려는 속성이 있다. 특히 아랫도리는 꼭 갖추어 입고 가려야 한다는 기성세대의 위선적 억압에 대한 반항일 수 있다. 자신의 벗은 아랫도리를 모두에게 보여줌으로써 더는 감출 것도 지닌 것도 없다는 젊은이들의 무의식적 시위 아닐까.

다만 의학적으로 보면 몸을 지나치게 조이는 스키니 패션이나 아랫도리를 차갑게 만드는 하의 실종 패션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남자의 경우 꽉 끼는 옷은 혈액순환이 되지 않아 건강한 정자를 만드는 데 방해가 되고 전립샘염이나 암과도 연관이 있다는 보고가 많다. 여성 역시 통기성이 부족하고 습해지면 질염이나 외음부 염증이 생긴다. 반대로 허벅지를 통째로 다 드러내면 바깥의 냉기 때문에 자궁과 하반신으로 가는 혈류가 수축돼 생리통이나 하지정맥류가 악화될 수 있다. 특히 마르고 긴 다리를 선호하면서 무리한 다이어트를 하다 보면 성호르몬 양과 근육량이 부족해 여성 건강이 위협받기도 한다. 임신과 출산을 부정적으로 보는 젊은이들의 태도가 요즘 유행에 반영된 것 같다는 의심도 든다. 한편으로는 가임기보다는 오히려 10대 이하 어린아이들이 입었을 때 훨씬 더 아름다운 하의 실종 패션에서 어른이나 부모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퇴행심리를 읽을 수도 있다.

음란패션 아닌 ‘미니멀리즘’

언젠가 또 다른 모습으로 재현될 수 있겠지만 하의 실종 패션 역시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이다. 모든 유행은 결국 소멸하니까. 다만 하필이면 왜 지금 하의 실종이 젊은이들에게 강하게 어필하는지 들여다보는 작업은 필요할 것 같다. 88만 원 세대나 비정규직 시대란 말처럼 직업도 결혼도 아이도 집도 어느 것 하나 쉽게 성취할 수 없는 대다수 젊은이들이 “차라리 아이가 되고 싶어요” “난 변변한 옷 하나 제대로 살 수 없어요” “그냥 자유롭고 편하게 살고 싶어요” “그저 감각적으로 즐기면 그만이에요”라고 외치는 거친 소리들이 담겨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이나미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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