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함재봉]고장난 美-日-中국정시스템… 한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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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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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장
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장
전 세계의 거버넌스 시스템이 총체적 난국에 빠지고 있다.

미국은 채무한도 상향 조정 문제를 둘러싸고 공화당과 민주당, 백악관과 의회, 상원과 하원, ‘티파티’로 상징되는 시민운동과 제도권이 법정 제한시간 마지막까지 진흙탕 싸움을 벌이면서 전 세계를 긴장시켰다. 수년째 지속되고 있는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근원적인 처방을 내놓기는커녕 위기의 한 증상을 놓고도 어떻게 대처할지 국론을 결집시키지 못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탄식대로 미국의 위상에 걸맞은 ‘트리플 에이’ 정치시스템이 없어 자칫 국가 신용등급이 강등되는 수모를 겪을 지경에 이를 뻔했다.

일본은 정치력의 부재와 개혁 의지의 상실로 1968년 이후 누려오던 세계 제2위 경제대국의 지위를 드디어 작년에 중국에 내주고 말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눈부신 복구를 가능케 했던 일본의 거버넌스 시스템은 이미 1980년대 말부터 그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일본은 대안을 찾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지진과 지진해일(쓰나미)까지 겪으면서 일본의 전후 체제는 또 한 번 그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구호식품과 물자가 넘치지만 조난자 구조와 원전 방사성물질 누출 방지를 위해 사투를 벌이던 구조대원과 이재민 모두 며칠씩 추위에 떨며 라면으로 연명해야 했고 급기야는 후쿠시마 주민 10여 명이 굶어 죽었다. 참을성 많기로 유명한 일본 시민도 드디어 들고 일어나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지도력 부족 총체적 난국에

복지국가의 발상지인 유럽 역시 총체적 난관에 봉착했다. 유럽연합(EU)은 과다한 복지지출로 재정파탄에 이른 이른바 ‘PIGS’, 즉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때문에, 그리고 이에 대처하는 해결책을 둘러싼 불협화음으로 경제통합과 정치통합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재정 건전성 회복을 위하여 필수적인 개혁을 둘러싸고 정부와 시민이, 국가와 국가가 지루한 기싸움과 줄다리기를 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지도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한 중국이 ‘대안’이 될 수도 없다. 비록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세계 경제위기를 슬기롭고 효율적으로 극복하였다고는 하지만 중국의 거버넌스 시스템 역시 많은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특히 며칠 전 발생한 고속철도 사고는 중국체제의 총체적 난맥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사고 하루 만에 사고차량을 웅덩이에 급히 묻어버리고 사고 원인에 대한 정확한 규명도 하지 않은 채 운행을 재개하자 여론이 들고 일어났다. 구조작업을 공식적으로 종결한 지 하루가 지나서 생존자가 발견되고 정부가 발표했던 사고 원인이 거짓으로 밝혀지자 인터넷 여론은 물론 제도권 언론사들마저 정부를 대놓고 비판하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원자바오 총리가 현장에 내려와 정부의 대응이 잘못되었음을 시인하고 재수사를 약속했다. 성장 목표치 달성과 경제적 성취에 대한 대외적 과시를 위해서는 다른 모든 것의 희생을 강요하던 정치 사회 체제가 그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위기의 근원을 찾아본다면 특정 지도자 개개인의 능력도 문제가 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시스템 자체가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장 효율적이고 끊임없이 부(富)를 창출해 낼 수 있다던 미국식 경제체제나 이보다 더 평등하면서도 효율적일 수 있다던 유럽식 체제, 그리고 이 모두를 대신할 수 있을 듯이 욱일승천하던 중국식 권위주의 경제 시스템 모두가 근원적인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고 국제 거버넌스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도 아니다. 기후문제 핵문제 기아문제 테러문제, 어느 하나 국제사회가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체제가 갖춰진 것이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년에는 미국 중국 러시아 대만 프랑스 인도 멕시코 스페인 아일랜드 등 수많은 국가에서 정권교체가 예정되어 있다. 전 세계적으로 불확실성과 혼란을 가중하는 또 다른 요인이다. 심지어는 북한마저 ‘강성대국 원년’ 운운하면서 권력세습을 통한 ‘정권교체’에 나섰다.

내년엔 선거 많아 혼란 가중될듯


우리도 내년에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다. 아무도 새로운 동력 창출을 위한 총체적인 개혁 청사진과 국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안보상황은 악화되는 와중에 기껏 유럽 등지에서 수십 년에 걸친 실험 결과 실패한 것으로 드러난 복지정책의 도입 여부만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총체적 위기를 정확히 파악하고 대안과 비전을 제시할 지도자와 새로운 정치연합의 출현이 절실한 때다.

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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