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기철]‘나는 가수다’에 반대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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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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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철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박기철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①엘턴 존 ②머라이어 캐리 ③에릭 클랩턴 ④셀린 디옹 ⑤비욘세 ⑥에미넴 ⑦제이슨 므라즈. 이들 일곱 명 중 누가 일등을 하고 꼴찌를 할까? 그런 장면을 보고 듣는다면 재미있겠지만 아마 그럴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일등을 못할까 봐, 꼴찌를 할까 봐 두려워서가 아니라 나름대로 일가견을 이룬 프로 가수로서의 자존감이 살아 있다면 그깟 가창력 경연대회에 시시하게 나가지 않는다. 방청객이나 시청자들에게 인위적으로 점수를 매기게 하여 순위를 가를 수 있을지언정 순위 결과에 말초적 흥미는 있을지 몰라도 근원적 의미는 없지 않을까. 한마디로 나름대로 컬러가 다르며 특색 있고 개성 있는데….

요즘 한창 인기 폭발 중인 ‘나는 가수다’는 가요계 판도까지 바꿀 정도로 영향력도 엄청나다. 분명 재미는 있다. 대다수 사람이 좋아한다. 대다수가 좋다고 하면 소수는 이의가 있더라도 대다수 의견에 마지못해 동조해 점점 침묵하고 만다는 침묵의 나선대로 나도 침묵할 수 있다.

하지만 작정하고 이견을 말하려고 한다. 과연 영향력이 크다고, 재미있다고 좋은 프로그램일까? 그냥 그러려니 하면 그만이겠지만 가만히 생각할 필요가 있다. ‘나는 가수다’는 순수 음악 프로그램이 아니라 예능과 복합된 프로그램이다. 예능이라는 말도 요즘 TV의 버라이어티(?) 쇼들 때문에 원래 의미가 심하게 변질됐다. 이제 예능이란 멋있는 예술적 재주가 아니라 웃기는 말솜씨 재주를 뜻한다. 예능+음악 프로그램으로서의 ‘나는 가수다’는 시청자들에게 이제껏 듣고 보지 못한 새로운 포맷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찬사를 받을 만하다.

그런데 뭐가 문제인가? 이는 가수로서의 색깔과 특색, 즉 다양성을 무시 및 부정하며 획일적으로 경쟁하는 꼴이다. 원래 음악이란 경쟁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신인가수를 선발하기 위한 경쟁은 어쩔 수 없으나 기성가수를 경쟁시키는 것은 아니다 싶다. 국민가수였던 김건모는 애당초 그런 프로그램에 나오는 게 아니고, 나와서 꼴찌했다고 심통 부릴 일은 더욱 아니었다. 사건 당시 경쟁의 공정성 문제가 시빗거리였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가수로서의 진정성 문제였다. 더더욱 아닌 것은 그가 꼴찌를 하였다고 노래를 잘 못하더라고 어설프게 판단하는 일반 대중이다. 꼴찌였더라도 가수 김건모는 노래를 잘한다. 가수 임재범이 일등을 했더라도 신나는 일은 아니었다. 감정을 터뜨려 절규(絶叫)하며 잘 부르는 것과 감정을 머금고 절제(節制)하며 잘 부르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가창법이 다를 뿐 가창력에서 우열이 가려질 일은 아니다.

‘나는 가수다’를 가만히 생각하면 왠지 삭막한 철망 안에서 피 튀기며 잔인하게 펼쳐지는 UFC 종합격투기를 보는 느낌이다. 싸움을 하는 격투기는 경쟁이 맞다. 하지만 음악은 경쟁과 어울리지 않는다. 소리(音)로 즐거워(樂)지려는 것이 음악이다. 음악에 승자와 패자가 확실해서는 어색하다. 오히려 애매해야 자연스럽다. 신인가수 등용의 오디션 프로그램도 아니고, 아마추어가 아니고 프로인 기성가수들을 대상으로 누가 잘 부르는지 따지며 듣고 보는 것은 한마디로 좀 유치하지 않은가? 무섭기도 하면서 우습기도 하다.

프로(professional)란 고백한다(profess)는 뜻 그대로 상대방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자가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 고백하는 경지에 다다른 고수이다. 음악에서 진정한 프로는 스포츠 경기처럼 맞붙어 경쟁하지 않는다. 치열한 경쟁의 시대라지만 음악만큼은 승부와 관계없이 음악 그대로 자연스럽게 즐기면 어떨까. 싸워서 이기려는 전략이 아니라 물 흐르는 순리에 따라 살면 현실적으로 우리 모두 더 잘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박기철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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