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손 큰 정치’가 재촉한 이탈리아 재정위기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13일 03시 00분


이탈리아의 재정위기 가능성이 악재로 작용해 어제 코스피가 2.2% 하락했다. 유럽과 미국 증시도 폭락했다. 이탈리아 주요 은행 주가는 하루에 7% 급락했고 국채 수익률은 2년 반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정(國政)보다 여성 편력에 몰두하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나라 곳간을 애써 지켜온 줄리오 트레몬티 재무장관을 해임할 움직임을 보이자 순식간에 위기감이 퍼졌다.

재정 위기에 봉착해 있거나 우려되는 유럽의 ‘피그스(PIIGS·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5개국 가운데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은 이미 구제금융을 받고 있다. 경제적 변방국인 이 나라들과 달리 유로 통화권에서 3위 경제인 이탈리아가 재정 위기에 빠지면 유럽 전체의 위기로 번질 수 있다. 미국 등 국제 금융시장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LG경제연구원은 그 충격이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보다 크지 않더라도 오래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탈리아의 지난 10년간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0.25%에 불과했다. 기득권 보호에 급급한 정책 탓이 크다. 몇 년째 약국 수가 늘지 않을 만큼 이 나라의 과잉규제는 악명이 높다. 노동생산성과 경쟁력이 떨어지고 청년실업이 특히 늘었다. 규제가 많을수록 정경 유착으로 인한 부패와 탈세도 갈수록 커졌다.

이탈리아의 응급실과 국립병원은 공짜 또는 저가 진료방식이다. 올해 연초 동아일보 기자가 찾은 로마의 한 국립병원 응급실은 별 증상도 없는 환자 50여 명이 독차지하고 있었다. 병원을 찾은 환자들은 한 달 후에나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이럴 거면 왜 많은 의료세금을 걷어갔느냐”고 불평했다. 과잉복지를 말로만 떠받치는 ‘손 큰 정치’가 재정위기를 재촉했다.

우리나라에선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때 튼튼한 재정이 안전판 역할을 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재정건전성이 크게 악화됐고 앞으로 고령화와 복지 확대, 남북통일 가능성 등을 감안하면 재정이 부족해질 수 있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소요 재원도 따져보지 않은 채 반값 등록금과 전면 무상급식 등 시혜적 복지를 주장한다. 규제 폐지로 국가경쟁력을 키운다던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은 ‘서민층 보호’의 명목으로 오히려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다. 이탈리아의 재정위기는 무엇보다 정치 리더십이 흔들리면 국가경제가 뿌리째 흔들린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도 장기 재정목표를 담은 재정준칙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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