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 문제 틀리면 지원대학 달라지는 물수능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6월 23일 03시 00분


6월 모의평가가 실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아니길 천만다행이다. 모의평가 결과 주요 과목의 만점자 비율이 3%를 웃돌고 언어 수리 영역의 만점자가 일명 ‘SKY대(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전체 입학정원보다 많이 나왔다. 모의평가가 아니라 그날의 컨디션 테스트라는 불만이 나온다. ‘실수 안하기 경쟁’을 시키려는 의도라면 몰라도 어쩌다 한 번 실수를 하면 지원대학이 바뀌어야 할 판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모의평가의 난도 조절 실패를 인정하면서 11월 수능에서는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수능 만점자 1%’를 내겠다는 교육과학기술부 방침부터 당장 폐기해야 한다. 쉬운 수능으로 수험생의 부담을 덜어주고 사교육비를 줄이려는 의도겠지만 교육의 본말(本末)을 뒤집고 평가의 본질을 훼손하는 정도여서는 안 된다. 수능은 대학입시에서 국가가 출제하는 유일한 시험이다. 물수능으로 변별력을 떨어뜨려 만점자 수를 대폭 늘려놓으면 우수 인재 육성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수능으로 가져가면 상위권 학생들에 대한 변별력이 상실돼 대학을 평준화로 몰고 갈 우려도 있다. 사실상 우리나라 지도자그룹이 될 상위권 학생들이 심화학습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이런 학생들이 어려운 시험과 평가로 단련된 중국 일본 등의 최상위권 학생과 세계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겠는가. 국가시험을 출제할 때는 사교육 감소 못지않게 미래 세대의 경쟁력 확보도 염두에 둬야 한다.

수능을 쉽게 출제한다고 해서 사교육이 줄어들지도 미지수다. 정부가 ‘수능 만점자 1%’ 방침을 밝힌 이후 서울 대치동 논술학원가가 문전성시를 이룬다. 변별력 없는 수능에 불안을 느낀 상위권 학생들이 논술시험에 대학입시가 달려 있다고 보고 논술학원으로 몰려들고 있다. 사교육의 풍선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대학들이 외고 과학고 자사고 등 특목고 출신 우대로 흐를 우려도 있다.

수능을 장기적으로 자격시험화하고 대학들이 다양한 전형요소로 학생을 뽑으라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정부는 그러면서도 사교육을 부추긴다며 대학들에 논술시험을 출제하지 말라고 압박한다. 수능은 쉽고 논술도 안 된다면 무슨 재주로 학생을 가려 뽑으란 것인지 모르겠다. 학생 선발이 ‘로또 뽑기’가 될 판이다. 사교육 감소도 좋지만 시험은 시험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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