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가부도로 가는 그리스를 뒤따를 건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6월 15일 03시 00분


미국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그리스의 장기채권등급(국가신용등급)을 B에서 CCC로 한꺼번에 세 단계 낮췄다. 국가부채의 ‘지급 불능 가능성이 있음’을 뜻하는 CCC 등급은 디폴트(채무불이행)에 해당하는 D등급보다 불과 4단계 높다. S&P는 “그리스가 디폴트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서구 문명의 요람인 그리스가 세계에서 신용등급이 가장 낮은 국가로 전락하면서 국가부도 위기에 몰려 있다.

2001년 유로(유럽 단일화폐)가 통용되는 유로존에 가입한 그리스는 싼 금리의 유로가 쏟아져 들어오자 정부부터 가계까지 돈을 흥청망청 썼다. 임금이 오르고 집값에 거품이 커졌다. 정부는 비대해지고 지출이 늘었다. 좌파 정당인 사회당이 1981년 집권한 이후 9번의 선거 중 6번을 이긴 이 나라에서는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 정치와 정책이 판을 쳤다. 사회 지도층, 공무원, 노동자, 일반 국민 할 것 없이 부패와 탈세의 늪에 빠졌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로 집값 거품이 꺼지면서 그리스 경제의 진면목이 드러났다. 정부는 방만한 공공부문과 복지 혜택을 유지하느라 국내총생산(GDP)의 110%를 넘는 국가 채무를 졌다. 결국 그리스는 지난해 5월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첫 유럽 국가로 전락해 1100억 유로(약 172조 원)를 빌렸다.

그리스 정부는 뒤늦게 재정 건전성 제고를 핵심으로 하는 개혁에 나섰지만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노조와 공무원, 이들을 표(票)로만 생각하는 정치권이 반대했다.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폭력시위를 ‘민주화 시위’로 오도하는 세력도 있었다. 결국 정부의 긴축정책은 표류했고 국가 채무가 줄기는커녕 올해 150%까지 높아져 위기의 악순환에 빠졌다. 포퓰리즘 정치에 맛을 들인 국민은 나라가 거덜 나도 허리띠를 졸라매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리스는 보여준다.

그리스의 추락은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권이 국부(國富) 확대와 재정 건전화는 뒷전인 채 나라 곳간을 비우는 경쟁에 몰두하고 있는 한국에도 경종을 울린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어제 “기업이든 국가든 개인이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빚이 많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바로 우리의 얘기로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정부라도 중심을 잡고 국민을 잘 설득해야 한다. 경제 위기에 대처하는 최후의 보루인 재정은 한 번 무너지면 다시 일으켜 세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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