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붉은 페인트 뒤집어쓴 ‘건국 대통령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6월 6일 03시 00분


부산 서구 임시수도기념관 앞에 설치된 이승만 전 대통령 동상이 3일 붉은 페인트를 뒤집어쓴 채로 발견됐다. 임시수도기념관은 6·25전쟁 발발 직후 수도를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전했을 때 이승만 대통령이 3년 동안 거처했던 곳으로 부산시가 1984년 기념관으로 조성했다. 누군가가 이 전 대통령에게 반대하는 뜻을 표출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페인트를 쏟아 부은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통령은 6·25전쟁 때 경남도지사 공관이었던 임시수도기념관을 지금의 청와대에 해당하는 부산 경무대로 삼았다. 그는 이곳에서 공산화를 막아내고 반공포로를 석방했으며 우리 안보의 초석인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구상했다. 이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건국 및 국난(國難) 극복의 공(功)과 함께 말년에는 독재정치의 과(過)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이 극도로 혼란스러웠던 광복 직후와 1950년대에 자유민주주의의 기틀을 세우고 북한의 남침을 저지해내지 못했더라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해운대 앞바다에 수장(水葬)됐을지도 모른다. 이 전 대통령에 대해 학계에서도 전과 달리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임시수도기념관은 이 전 대통령과 관련된 역사적 장소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전 대통령 동상은 그에 대한 좋고 싫음을 떠나 관람객에게 건국 대통령의 공과를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한 가지 잣대가 아닌 다양한 관점을 통해 객관적으로 이뤄지는 일이 중요하다.

지난해 2월 국립서울현충원의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일어났다. 지난해 11월에는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에 노 전 대통령에게 불만을 품은 60대 남성이 인분을 투척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전직 대통령의 묘소와 기념물에 대한 훼손이 잇따르는 것은 우려스러운 사태다. 이러다가는 경북 구미시 상모동 생가 앞에 들어설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에 대해서도 비슷한 훼손이 가해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작고한 전직 대통령과 정치적인 견해가 다르다거나 싫어하는 대통령이라고 해서 묘소나 기념물을 훼손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테러나 다름없다.

우리 사회도 이제 전직 대통령에 대한 모욕을 용인하지 않는 성숙된 역사인식을 보일 때가 됐다. 전직 대통령들은 잘했든 못했든 모두 우리의 역사다. 경찰은 범인을 반드시 찾아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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