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황의돈]‘미군기지 고엽제’ 지혜롭게 대처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6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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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돈 전 육군참모총장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황의돈 전 육군참모총장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최근 왜관, 부천, 부평 등 미군기지에 베트남전쟁 당시 사용한 고엽제나 화학물질이 매립됐다는 주장이 나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일부 언론과 진보 진영은 “미군이 우리와 협의 없이 독성물질을 무단 매립하고 은폐한 것 아니냐”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미군기지 주변 주민들의 불안과 걱정도 커지고 있다.

정부도 주한미군도 심각성 인식

이번 일은 환경주권 및 국민건강 문제와 직결되고 미국에 대한 우리 국민의 신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대 사안이다. 주한미군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해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환경분과위 소집 없이 사실상 한미공동조사안을 수용하고, 캠프 캐럴기지 외곽에 대한 수질검사를 하고 있다. 한미 양국은 공동조사를 위한 조사단 구성, 조사 방법과 절차, 비용 등에 대해 이미 협의했다. 미군이 우리 국민의 정서를 고려해 기민하게 대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천이나 부평 등 우리가 이미 반환받은 기지는 주한미군과의 합의 없이도 조사할 수 있지만 한미동맹 정신을 존중해 미군의 참관, 기록 제공 등 협력을 받아 조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한미 양측이 공동조사를 철저히 하는 일이다. 조사 결과에 따라 환경오염 치유와 보상 등 후속조치를 협의해 나가는 것이 합당한 순서다.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반미 감정을 부추기거나 무조건적인 사과나 보상, SOFA 규정 개정 등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성급하고 온당치 않다.

공동조사에 앞서 이번 사안을 슬기롭게 해결하기 위해 한미 양측이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먼저, 미국 측은 한국 측과 긴밀히 공조해 대한민국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명명백백하게 진실을 밝히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아무리 소소한 것이라도 줄이거나 감추려 한다는 오해를 자초해서는 안 되며 모든 정보를 한국 측과 공유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런 면에서 초기에 미국 측이 보여준 자세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그러나 향후 조사과정에서 미국 측이 자신의 입장을 우선 반영하려 하거나 미국 규정만을 앞세우는 듯한 인상을 줄 경우 2002년 효순·미선 사건의 악몽이 되풀이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둘째, 우리 측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SOFA 규정을 내세워 어쩔 수 없다는 등 미국 측의 입장을 관대하게 이해하려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 무엇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고려해 개선하려는 기준과 중심을 잃지 말아야 하며, 한 점 의혹이 없도록 공동조사에 임하겠다는 준엄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셋째, 국민도 정밀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선정적으로 이슈를 만들거나 정치 쟁점화에 목적을 둔 의도에 동요해서는 안 된다. 선진국에서 사회적 이슈가 생겼을 때 정부의 조사 결과를 참고 기다리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본받았으면 한다. 섣부른 판단으로 즉각적 감정적으로 대응하거나 국민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사실과 관계 협정에 근거해 요구할 것은 당당하게 요구하고, SOFA 규정의 개정이 필요하면 절차에 따라 논의하면 된다.

국민 불안감 부추겨서는 안된다

마지막으로 대승적 차원에서 한미동맹을 잘 관리해 상호 윈윈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미 양국은 북한의 위협에 공동 대처해야 하고 전시작전권 전환, 주한미군 기지 이전 등 여러 분야에서 공조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 우리가 더 큰 틀에서 냉정하게 문제를 해결한다면 이번 일이 한 차원 발전된 한미 공조의 성공 모델이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공동조사다. 이는 전문가의 영역이다. 전문가의 판단을 존중하고 뜨거운 감정이 아닌 냉철한 이성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황의돈 전 육군참모총장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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