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네이멍구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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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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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는 22개의 성(省), 5개 자치구와 4개 직할시 등 모두 31개의 행정구역이 있다. 네이멍구(內蒙古·내몽고) 자치구는 면적만 놓고 보면 세 번째로 넓다. 네이멍구는 한족 농민과 몽골 유목민이 대립하며 번갈아 지배하던 지역이다. 사막 등 불모지가 많아 인구는 약 2400만 명. 명색이 자치구라지만 한족의 ‘인해 전술’에 밀려 인종 분포는 한족이 83%로 몽골족(15%)을 훨씬 앞질렀다.

▷칭기즈칸은 중국을 통일한 뒤 원나라를 세웠으나 동생 카사르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카사르가 이끄는 호르친 부(部)는 원래 그들이 살던 몽골 초원에 머물러야 했다. 카사르의 후예들은 후금(나중에 청)이 일어나자 결혼 동맹을 맺었다. 1636년 일찌감치 청에 복속됐고 1947년 중국의 소수민족 몽골족으로 네이멍구 자치구를 부여받았다. 내몽고, 외몽고는 청나라와 중국의 관점에서 나온 말이다.

▷중국인과 몽골인의 반목은 역사적 뿌리가 깊다. 13세기 몽골 고원에서 떨쳐 일어난 칭기즈칸이 수백만 명의 중국인을 죽이고 대제국을 세웠을 때부터 악연은 시작됐다. 칭기즈칸은 중국인들을 북쪽 끝 벌판으로 내쫓으려다가 “그냥 두면 이들에게 세금을 거둘 수 있다”는 조언에 살려두었다고 한다. 중국은 문화대혁명 때 네이멍구 지역의 일부를 헤이룽장 성, 지린 성, 랴오닝 성에 떼어주었다. 외몽고만이라도 독립을 이룬 것은 소련 지원 덕분이다. 중국 공산당 지도자 마오쩌둥은 소련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에 외몽고 독립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다.

▷네이멍구 지역에서 몽골 유목민 한 명이 한족 운전사가 몰던 탄광업체의 대형 트럭에 깔려 숨지면서 몽골인의 항의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지방 정부는 이번 사태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법에 따라 엄정히 다룰 것”이라며 이례적 대응에 나섰다. 4일은 톈안먼(天安門) 사태가 발생한 지 22주년이 되는 날이다. 중국은 티베트 신장위구르의 분리독립 운동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마당에 네이멍구 시위까지 겹쳤다. 중국 정부는 신장위구르, 티베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민족 갈등이 심하지 않은 네이멍구 자치구에서 이 사건을 계기로 몽골인의 반(反)한족 움직임이 거세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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