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완전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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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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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범죄’ 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케빈 스페이시가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준 할리우드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다. ‘유주얼 서스펙트’란 범죄가 발생했을 때 경찰이 용의 선상에 가장 먼저 올려놓고 소환하는 용의자를 말한다. 유력한 용의자 버벌 역을 맡았던 스페이시가 혐의를 벗고 경찰서를 나오면서 절름거리던 두 발을 똑바로 펴고 걷는 장면은 반전의 백미다.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최근 구속된 경남 모 대학 강모 교수도 완전 범죄를 노린 듯하다. 국내 명문대를 졸업한 강 씨는 컴퓨터범죄 전문가로 검경 사이버범죄 전문위원과 한국컴퓨터범죄연구학회 회장을 지냈다. 그는 전문 지식을 활용해 아내와 만나는 장소와 시신을 운반하는 길을 폐쇄회로(CC)TV가 없는 곳으로 골랐다. 범행 날짜를 산행모임 회식이 있던 날로 잡아 알리바이를 만들었다. 내연녀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없애기 위해 서울의 카카오톡 본사를 방문해 메시지를 삭제했다. 그리고 아내가 실종됐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강 씨의 범죄는 ‘양식 없는 지식’의 위험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미궁에 빠질 뻔한 그의 범행은 시신이 담긴 가방이 물 위로 떠오르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시신을 담은 가방을 구입하는 장면은 매장 CCTV에 찍혔고 카카오톡 문자메시지는 경찰이 복구해냈다. 강 씨는 시신을 낙동강 하구언에 버리면서 바다로 떠내려 갈 줄 알았으나 그의 예측과는 달리 시신은 역물살을 타고 강물 위에서 발견됐다.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의 시신은 그냥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떠올라 한풀이를 위한 단서를 제공하는 사례가 많다.

▷CCTV와 DNA분석, 디지털복구 기술 등 과학수사 기법의 발달로 완전 범죄는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쥐 식빵 자작극’ ‘만삭 의사부인 질식사’ ‘삼성전자 휴대전화 폭발’ 사건에서 과학수사가 진실을 밝혀냈다. 머리카락 한 올 또는 타액이나 정액 한 방울에서도 DNA를 추출해내는 분석기법은 범죄 수사에 신기원을 열었다. 사생활침해 논란에도 불구하고 CCTV의 범인검거 효과는 위력적이다.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이용하면 모든 기록이 화석처럼 남는다. 컴퓨터 전문가인 강 씨는 살인을 컴퓨터 게임처럼 너무 쉽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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