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송상근]반값 등록금의 두가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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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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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근 교육복지부 차장
송상근 교육복지부 차장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의 회고록 ‘국가가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읽다가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됐다.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만들 때 제4차(1977∼1981년)부터 사회부문 정책을 포함시켰는데 의료보험을 놓고 격렬한 토론이 벌어졌다고 한다. 흥미로운 부분은 경제기획원이 도입을 주장한 반면 보건사회부는 시기상조라며 부정적이었다는 점이다.

도입에 합의한 뒤, 방법을 놓고도 의견이 엇갈렸다. 경제기획원은 모든 국민이 대상인 개(皆)보험을, 보건사회부는 단계적 확대를 원했다. 복지예산을 조금이라도 늘리려는 보건복지부와 가능하면 삭감하려는 기획재정부의 요즘 모습과 정반대다.

의료보험을 전면 시행했다면 어떠했을까. 재정과 의료 인프라가 충분하지 못했으므로 부작용이 뒤따랐을 가능성이 높다. 김대중 정부가 의약분업을 2000년에 전면 도입한 뒤 의료계가 파업에 들어가고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된 일을 생각해 보자.

강 전 부총리는 직장보험부터 시작해 지역보험으로 확대하고 그 후 통합해 오늘의 의료보험제도로 발전한 길이 지금 생각해도 가장 현명하고 적절했다고 평가했다.

이상적인 제도라도 여건이 따라주지 않으면 시행하기 어렵고,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무상(無償) 시리즈의 역사가 이를 잘 설명한다.

의무교육을 받는 학생 모두에게 무상급식을 한다는 법안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8년 7월 공화당이 만들었다.

초등학교 취학 직전 1년의 유아에 대한 보육을 무상으로 한다는 영유아보육법개정안은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이 1997년 11월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법을 만들고도 지금까지 완전한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을 하지 못한 이유는 간단하다. 재정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워서다.

보건복지부 직원들이 요즘 열심히 읽는다는 ‘복지논쟁: 무엇이 문제이고 어디로 가야 하나’(현진권)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복지분야의 예산은 한번 집행하면, 절대 되돌릴 수 없는 비가역성이란 특성을 가진다. 한번 집행된 복지예산은 이미 수혜자들에게 기득권으로 작용한다. 이들은 정치권에 이해집단으로 압력을 행사할 수 있으므로, 한번 집행된 복지예산은 절대 거두어들일 수 없다.’

돈이 없는 복지제도는 껍데기나 마찬가지다. 완전 무상이지만 북한의 의료를 부러워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2004년 4월 평안북도 용천역에서 폭발사고가 났을 때 붕대가 없어서 낡은 옷으로 어린이의 상처를 동여맨 게 북한판 무상의료의 실상이다.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가 반값 등록금 카드를 꺼낸 뒤 당내에서, 또 당정 간에 논란이 분분하다. 한쪽에서는 표(票)퓰리즘이라 비난하고, 한쪽에서는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한다.

반값 등록금은 한나라당이 야당이던 2006년 지방선거에서 내놓았고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의원 시절 주장한 정책이다.

이명박 정부가 집권하고 이주호 장관이 입각하고도 현실화하지 못한 이유부터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결국은 재원 마련이 관건이다. 진전이 없는 부실대학 구조조정, 논란이 여전한 기여 입학제, 통일 이후의 교육재정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단계적 도입으로 안착한 의료보험, 전면적 시행으로 후유증을 부른 의약분업. 반값 등록금 문제를 푸는 데 당정이 어느 길을 택할지 궁금하다.

송상근 교육복지부 차장 song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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