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황규인]‘입양아 신상 공개’ 광고… 그들의 인권은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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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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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인 국제부
황규인 국제부
기자는 2009년 12월 미국 코네티컷대에 재직 중인 한국인 교수로부터 “입양을 주선하고 싶다”는 전화를 받았다. 초등학교 5학년 소녀가 해외 연수를 갔다 임신했다는 기사를 쓴 직후였다. 기자는 5학년 소녀와 태어날 아이가 국내에서 고통 받는 것보다 새 삶을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녀의 부모는 “입양 사실이 기록으로 남으면 아이가 언젠가 자신이 세상에 잘못 태어났다는 생각을 할지 모른다”며 입양 관련 보도를 강력 반대했다. “설사 입양을 시키더라도 우리가 알아서 조용히 하겠다”고 했다. 소녀의 아픔에 대해 익명으로 기사를 쓰면서 혹시 성(姓)이 비슷한 소녀들이 피해를 볼까 봐 익명 처리할 때 흔히 쓰는 영어 이니셜도 피했다. 그래도 미안한 마음을 씻을 수는 없었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입양 대기 중인 아이 30명이 직접 등장해 자기 프로필을 1분가량씩 소개하는 TV 광고를 만들었다. 한국정책방송(KTV)을 시작으로 공중파에서도 이 광고를 방영할 계획이다. 복지부는 “인권 침해 논란이 있는 줄 알지만 법률 검토 결과 문제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인도 입양 장려 및 아동 복지 협회(IAPACW)’의 입양 장려 광고. 사진 출처 IAPACW 홈페이지
‘인도 입양 장려 및 아동 복지 협회(IAPACW)’의 입양 장려 광고. 사진 출처 IAPACW 홈페이지
하지만 ‘법은 도덕의 최소한’일 뿐이다. 이양희 유엔 아동권리위원장은 15일 스위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면서 “어린이들을 마치 온라인 쇼핑몰에 내놓은 상품처럼 취급하는 건 심각한 인권 침해”라며 “만약 이 아이들이 성장해서 ‘왜 동의 없이 내 신상을 TV에 공개했느냐’고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말했다.

복지부는 “이미 미국, 영국 등에서 같은 내용의 광고가 등장해 입양 홍보에 성공을 거뒀다”며 광고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있다. 그러나 입양이 대중화된 서구에서도 이런 광고는 항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진심으로 궁금하다. 아이들을 자기 홍보로 내모는 TV 광고가 ‘입양하세요. 당신이 평생 줄 수 있는 사랑보다 더 많이 받을 수 있습니다’(인도의 입양 홍보광고)라고 한 줄만 쓴 광고보다 사람들 마음을 더 움직일 수 있다고 복지부는 믿는 것일까.

황규인 국제부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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