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최병일]‘FTA 뒷받침’ 무역조정지원制 손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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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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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FTA교수연구회 회장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FTA교수연구회 회장
한국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자유무역협정(FTA) 정책은 시장 개방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 국익을 증진하는 주요 경로의 하나가 개방을 통해 경제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개방의 외생적인 충격에 의해 국내 경제의 희소자원이 비교우위 원리에 따라 재배분돼야 한다. 이 과정은 상당한 경제적 사회적 진통을 수반한다. 새로운 직종을 찾아야 한다는 두려움, 그 직종을 찾기까지의 불확실성 때문에 사람들은 지금까지 해온 일을 쉽게 떠나려 하지 않고 개방에 저항하기 마련이다. 이들의 생계형 저항을 설득하고 극복하려면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바로 무역조정지원제도의 존재 이유이다.

생계형 반대론자들의 저항을 완화시켰는가, 또 생산자원을 보다 경쟁력 있는 부문으로 원활하게 이전시키는 데 도움이 됐는가. 이 두 가지는 무역조정지원제도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는 잣대다. 이 점에서 한국의 무역조정지원제도는 낙제점을 면하기 어렵다. 제도 도입 이후 지난 4년간 단 몇 건에 불과한 사례는 유럽연합(EU)과 미국 같은 거대경제권과의 FTA가 발효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들 FTA가 발효되기 전에 제도를 근본적으로 손질하지 않는다면 허울 좋은 제도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무역조정지원제도의 바람직한 개편 방향은 무엇일까. 첫째, 지원 내용과 대상이 바뀌어야 한다. 현재 지식경제부 산하 중소기업진흥공단이 주도하고 있는 무역조정지원사업은 생산성이 취약한 한계기업의 전업이나 폐업 유도가 아닌 기업의 운영자금 지원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어 ‘무역조정지원’이 아니라 구태의연한 ‘중소기업 육성책’에 가깝다. 한계기업을 온존시키는 방식은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을 뿐 아니라 경제의 활력을 잠식할 우려가 크다.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한 환자에게 잠시 영양제를 놓는 것으로는 곤란하다.

무역조정지원제도를 50년 이상 운영해오고 있는 미국의 경우 이를 실패한 방식으로 판단해 1986년 폐기 처분했다.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기 쉬운 기업 지원책보다는 근로자 지원책, 특히 실직자를 위한 사회안전망 확대가 초점이다. 기업 지원은 구조조정을 위한 컨설팅서비스에 국한하고 그 비중 또한 전체 예산의 2%에도 못 미치는 그들의 경험을 우리는 주시해야 한다.

둘째, 피해 그룹의 반발이 있을 때마다 피해 규모를 산업별로 산정해 천문학적 예산을 누더기식 특별법으로 투입하는 관행은 바뀌어야 한다. 먼저 개방에 따른 피해 지원 규모의 상한선을 무역조정지원예산으로 책정하고 그 범위 내에서 보상원칙과 구체적 지원금액을 결정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 비준동의를 인질로 논의시간이 길어질수록 지원 규모가 늘어나는 무책임한 상황은 종결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셋째, 지금의 행정편의주의적 선정 방식을 간소화하여 피해 기업이 쉽게 지원의 문을 두드릴 수 있도록 문턱을 과감하게 낮추어야 한다. 기업의 행정부담을 최소화하고 신속하게 실효성 있는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넷째, 농업 분야에 대한 무역조정지원과 제조업에 대한 지원이 따로 운영되는 현 시스템은 분야 간 형평성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제도 운영에 관료집단의 이해관계가 반영돼 세금을 낭비할 우려가 높기 때문에 운영 주체를 FTA 국내대책본부로 일원화하는 게 합당하다.

FTA 협상이 끝난 뒤 국회 비준동의 때마다 논란이 되는 피해산업 보완 대책에 대한 쓸 만한 기본틀로 작동하려면 분절화되고 관료화된 무역조정지원제도는 시급히 손질되어야 마땅하다. 큰 비행기를 띄우려면 큰 활주로가 필요하다. 우리 활주로는 턱없이 좁고 울퉁불퉁하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FTA교수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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