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국사 필수’ 왜곡된 내용부터 반드시 고쳐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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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한국사’ 6개 검정 교과서 가운데 일부는 남한의 이승만 정권을 ‘독재 권력’이라고 명시한 반면 김일성 정권에 대해서는 ‘북한은 김일성을 따르는 항일유격대 출신 인사들이 정권을 장악했다. 이들은 전후 복구사업을 주도하면서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를 구축했다’며 북한의 편에 서서 기술하고 있다. 북한의 이른바 주체사상과 선군(先軍)정치에 대해서도 ‘독자 노선을 모색하다’라는 식으로 감싸고 있다. 김정일의 정권 세습을 두고 ‘세습’이라고 분명히 밝힌 교과서는 1개에 불과했다. 다른 교과서들은 ‘후계 체제 확립’ 등으로 썼다. 그러면서 북한의 인권과 정치범수용소 참상은 5개 교과서가 전혀 다루지 않았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내년 고교 입학생부터 필수과목으로 가르치겠다는 고교 ‘한국사’ 교과서들은 주민 지옥을 만든 북한 체제를 오히려 높여 보는 좌(左)편향 기술(記述)을 개선하지 않았다. 반면에 대한민국 건국에 부정적인 시각이 교과서 곳곳에 들어 있다. 제대로 된 한국사를 가르쳐야 ‘한국사 필수화’ 취지를 살릴 수 있다. 지금과 같은 내용을 의무적으로 배우게 하면 잘못된 역사인식을 확산시킬 것이다.

중국과 일본은 내부 결속을 위해 자국 역사를 미화(美化)하고, 과장해 젊은 세대에게 가르치고 있다. 우리가 대한민국을 부정(否定)하고 폄훼하는 역사를 가르친다면 우리 후세대가 바른 국가관을 갖고 경쟁국 동년배들과 당당하게 경쟁할 수 있겠는가. 자기비하, 자학으로 얼룩진 왜곡된 역사라면 가르치지 않는 것이 우리 아이들을 그나마 덜 나쁘게 키우는 길이다.

북한이 1946년 2월 임시인민위원회를 조직해 사실상의 단독정부를 먼저 세운 것은 1990년대 공개된 구(舊)소련 기밀문서 등을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그러나 교과서들은 북한보다 4개월 뒤인 1946년 6월 이승만 대통령이 전북 정읍에서 “통일 정부를 고대하지만, 여의치 않으면 남쪽이라도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이라도 조직해야 한다”고 말한 것을 부각하고, 북한의 단독정부 수립 사실은 분명하게 다루지 않고 있다. 학생들은 남북 분단의 책임이 마치 남한 쪽에 있는 것으로 잘못 인식할 소지가 크다.

교과서는 ‘미 군정(軍政)의 정책이 토지개혁 등을 바라는 농민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기술한 반면 ‘북한은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토지개혁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토지개혁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 하지만 토지가 국가 소유인 공산주의 체제에서 ‘무상분배’라는 표현은 옳지 않다. 북한은 개인에게 주었던 경작권도 1950년대 협동농장을 만들어 회수했다. 이에 비해 이승만 정권이 6·25전쟁 직전 실시한 농지개혁은 훨씬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교과서들이 제3세계 운동을 과도한 비중으로 다룬 것도 균형감을 상실한 집필이었다.

피카소의 그림 ‘한국에서의 학살’이 교과서에 실린 것도 논란을 부르고 있다. 이 그림은 6·25전쟁 때 황해도 신천에서 발생한 민간인 희생사건을 다룬 것이다. 당시 피카소는 미군이 저질렀다는 북한의 선전에 넘어가 이 그림을 그렸고, 이후 미군을 비판하는 상징적인 작품이 됐다. 그러나 신천 사건은 최근 연구 결과 미군의 행위가 아니라 해당 지역의 좌우 갈등에서 빚어졌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어떤 의도에서 그림을 실었는지 궁금하다.

교과부는 현행 한국사 교육이 크게 잘못돼 있다는 문제의식부터 가져야 한다. 근현대사의 왜곡된 내용을 반드시 고친 다음 한국사 필수화를 추진해야 한다. 한국사 이외의 다른 전공 학자까지 폭을 넓혀 근현대사 교과서를 개찬(改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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