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성미]외규장각 도서, 문화재 반환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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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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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미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이성미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급 한국 문화재, 145년 만의 귀환! 4월 14일은 우리나라 문화사에 큰 이정표 하나를 세운 날이다. 병인양요(1866년) 때 프랑스 해군에 약탈돼 이듬해인 1867년 프랑스 국유재산으로 등록된 297책의 각종 의궤(儀軌) 전적(典籍)은 창덕궁 규장각의 강화도 분관 격인 외규장각(外奎章閣)에 보관돼 있던 것들이다.

日 등 세계각국에 수십만점 유출

조선 왕조의 모든 국가적 행사는 유교의 예절 규범에 의거해 엄격하게 치러지고 준비 단계부터 종료 때까지의 모든 과정, 소요 물품, 종사 인원의 명단 등을 상세히 기록했다. 그 특정 행사가 왕실의 혼례, 국장(國葬) 등 거리 행렬을 포함하는 것이면 행렬 참여인원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려 넣은 채색 반차도(班次圖)를 포함하여 책으로 만들어 보관한 것이 바로 의궤, 즉 국가 의식(儀式)의 궤범(軌範)이다. 대부분 의궤는 필사본으로 복수(複數)로 제작돼 규장각 외에 관련 기관, 지방에 분산돼 있었던 사고(史庫) 등에 비치됐다. 이번에 돌아오는 외규장각 의궤들은 국왕을 위해 특수 제작된 어람용(御覽用)이어서 그 의의가 크다.

외규장각 의궤의 귀환에 즈음하여 우리나라가 역사상 많은 전란을 치르는 과정에서 빼앗긴 소위 ‘약탈 문화재’ 반환에 관한 문제를 다시 한 번 짚어볼 계기가 마련됐다. 현재 일본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 우리 문화재 수십만 점이 있다는 사실이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조사 결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일본 왕실에 기증하도록 강요해 일본으로 가져간 전적들이 상당수 있으며, 일본 궁내청(宮內廳)이 보관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들을 돌려주기로 하였으나 아직 구체적인 일정이 잡히지 않은 상태다. 또한 일본에 유출 경위가 확인되지 않은 수많은 국보급 고려불화가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해외 문화재 소장 현황 파악에 그치지 말고 유출 경위를 캐내야만 반환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현재 국제적으로 약탈문화재 반환에 관한 각종 조약이 있다. 1954년 체결된 무력충돌 시 문화재 보호를 위한 협약, 1970년 유네스코가 체결한 문화재의 불법적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 금지와 방지에 관한 협약, 1995년 체결된 도난 또는 불법 반출된 문화재의 반환에 관한 사법통일국제연구소(UNIDROIT) 협약 등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해외 문화재들은 그 유출 시점이 이들 조약이 체결되기 훨씬 이전이라는 점 때문에 이들 협약의 혜택을 보기 어렵다는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국제 협약들을 소급적용하기 어렵다고 해서 세계 각국에서 원산국이나 원소유국으로의 문화재 반환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2006년부터 이탈리아 정부가 미국 내 다수 박물관들과 개별 협상을 벌여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불법 유출된 자국의 문화재 다수를, 여러 조건이 따르기는 하지만 ‘소유권 이전’이라는 명목으로 돌려받았다. 특히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 1972년 구입하여 자랑으로 삼았던 유프로니우스 크레이터(기원전 515년경 제작된, 그림이 아름다운 그리스 토기)가 이탈리아로 귀환된 것이 뉴욕타임스에 크게 보도돼 세계인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처럼 반드시 ‘반환’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고려불화도 한국으로 돌아올 길은 있을 것이다.

반출경위 조사해 실마리 풀어가야

우리는 해외로 반출된 우리 문화재에 관한 국가적 차원의 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즉, 반출된 문화재들을 선별적으로 가져오는 방법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현재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주요 박물관에는 한국국제교류재단과 한국 기업들이 협력하여 만들어 놓은 독립된 한국미술실이 잘 설치돼 있고, 세계 각국에서 연간 수백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가며 한국의 문화재를 감상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 반환받을 것은 받도록 노력하고 우리 문화의 해외 홍보를 위해 남겨둘 것은 남겨두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성미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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