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장환수]만갑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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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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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탤런트 조형기의 별명은 ‘만갑 형님’이다. 몇 년 전 한 건강 프로그램에서다. 개그맨 이경규와 김용만은 흡연 경력에 대해 늘어놓다 조형기에게 한 방에 제압당했다. “난 만 갑은 피웠어.” 그때부터 ‘아이고, 형니∼임’이 됐다.

이처럼 1만이란 숫자가 주는 위압감은 대단하다. 하지만 따져보면 ‘만갑’은 형님 축에 낄 정도는 아니다. 하루 한 갑을 피우는 애연가는 27년 5개월이면 1만 갑을 채울 수 있다. 대체로 40대 중후반이면 달성 가능하다. 하루 두 갑씩 불사르는 헤비 스모커라면 30대 초중반에, 담배를 물고 밥을 먹는 체인 스모커라면 20대 후반에 가볍게 밟을 수 있는 고지다. 실제로 기자는 ‘이만갑’ 형님이며 주위엔 ‘삼만갑’ 큰 형님들도 제법 있다.

기자도 한때 숫자 1만의 마력에 현혹된 적이 있다. 살아 있다는 게 머릿속이 아닌 피부 끝으로 느껴지던 어린 시절. 모든 걸 이루는 데 1만 일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9738일 만에 요절한 이상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세월은 쏜살같아 1만 일이 지나고 다시 20년이 더 흘렀다. 이룬 건 없고 불만만 가득한 초라한 삶. 그것도 모자라 가증스럽게 두 아이까지 인생의 볼모로 남겼다. 어른들 말씀처럼 이제 내 삶은 없고 아이들을 위한 삶만 남았다. 전세는 극히 불리하다. 이럴 땐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제부터 삶은 덤이라 생각하기. 이겨내지 못할 바에야 받아들이고 즐기기.

그러고 보면 스포츠에서도 덧거리 문화는 감초 역할을 한다. 프로 리그의 포스트시즌이 대표적인 경우다. 미국 메이저리그와 일본프로야구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양대 리그의 우승팀이 시즌이 끝난 뒤 페넌트레이스 우승컵과는 별도의 트로피를 놓고 겨루는 게 유일했다. 그러던 게 머리 좋은 한국 야구인들에 의해 세계의 야구 문화가 바뀌게 된다. 국내 프로야구는 8개 팀의 절반인 4개 팀이 가을 잔치에 초대받는 덤을 누린다. 승률 5할도 안 되는 팀이 우승을 다투는 경우도 있다. 깜짝 돌풍이 가능한 한국의 포스트시즌 방식은 미국과 일본에 역수입됐다. 이제 미국은 30개 팀 중 8개 팀이, 일본은 12개 팀 중 6개 팀이 포스트시즌에 나간다.

한국 축구도 세상에서 가장 독특한 방식으로 치러진다. 유럽 축구는 정규 시즌을 통해 우승팀이 가려지면 그것으로 끝이다. 하지만 한국은 6강이 참가하는 포스트시즌이 있다. 그렇다고 유럽 축구에 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규 리그와는 별도로 펼쳐지는 이벤트성 대회인 챔피언스리그, 컵대회, FA컵 등이 그것이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덤도 있다. 국내 프로농구는 남자 10개 팀 중 6개 팀이, 여자 6개 팀 중 4개 팀이 포스트시즌 진출권을 얻는다. 프로배구는 남자 7개 팀 중 4개 팀, 여자 5개 팀 중 3개 팀이 정규 시즌이 끝난 뒤에도 경기를 한다. 특히 프로배구는 남자가 팀당 5경기, 여자가 팀당 6경기만 하면 정규 시즌이 끝나지만 챔피언 결정전에서 만난 팀과는 최대 7경기를 해야 한다.

리그 운영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팬들은 덤으로 보는 한 방 역전 승부가 흥미진진하다. 1만 일은 지났지만 다가올 2만 일과 3만 일이 있다. 3만 일은 한국인의 평균 수명과 거의 일치한다. 덤으로 사는 인생에서도 짜릿한 역전 드라마가 일어날 수 있을까.

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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