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위용]체르노빌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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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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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위용 교육복지부 차장
정위용 교육복지부 차장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거리에서 ‘원전사고 보상금을 달라’고 외치는 노인들은 대부분 알코올의존증 증세를 보인다. 잘 모르는 사람 눈에는 소련 시절의 술주정뱅이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실은 이들이야말로 지금부터 25년 전인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 당시 낙진(落塵) 제거에 나섰던 용감한 군인과 소방대원들이다. 모두 100mSv(밀리시버트) 이상의 방사선에 노출됐다. 흉부 X선 촬영을 5000번 찍는 것과 맞먹는 과도한 양이다. 이들의 동료는 사고 직후부터 지금까지 매년 수십 명씩 숨지고 있다. 길거리로 나올 정도로 신체 능력이 남아 있는 이들은 가장 오랫동안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겪고 있는 셈이다.

그 고통 중 하나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다. 생존자 중 이 병에 걸린 환자의 비중이 가장 높다. 시간이 지날수록 발생률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병은 일종의 마음의 상처다. 주로 감당하기 힘든 경험을 했을 때 심리적 외상이 뇌 속에 박힌다고 한다. 실제 위험이 없어도 과잉 반응을 보이거나 직업적 무능력, 자살충동 등의 증세가 나타난다. 알코올의존증도 이 병에 동반되는 증세다. 모두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런데 PTSD라는 진단을 받지 못해 치료조차 받지 못하는 주민들은 수적으로 훨씬 많다. 원전 반경 100km 이내에 살고 있었거나 새로 이주한 주민들에게서 나타나는 집단 ‘피해의식(victim mentality)’이 그런 예다.

모스크바 특파원으로 일하던 2007년 10월 체르노빌에서 100km 이상 떨어진 키예프에 취재 갔을 때 그런 현상을 직접 봤다. 사고 후 21년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주민들은 식료품 가게에 진열된 생수나 우유, 채소를 보고 “(체르노빌에서 멀리 떨어진) 남쪽에서 온 것이 맞느냐”며 주인에게 몇 차례씩 물었다.

모스크바에서 만난 핵 전문가들은 그때까지도 “사고 수습을 잘못하는 바람에 추가 희생자가 언제까지, 얼마나 더 나올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체르노빌 사고 수습 단계에서 피해를 키운 사람들은 사고 정보를 숨기고 주민 통제에만 혈안이 됐던 소련 관료들과 공산당원이었다. 원전 주변 주민들은 세슘과 요오드가 번진 뒤 하루 이상이 지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다. 폴란드와 같은 주변 국가도 사고 정보를 받지 못해 희생자를 줄이지 못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수습 과정에서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이 체르노빌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은 인접국인 한국에도 불행한 일이다. 관료들이 주도하는 사고 수습, 정보의 불완전 공개, 언론의 무지와 무감각 등이 체르노빌과 닮은 단면들이다. 물론 일본이 뒤늦게나마 정보를 공개하고 해외의 지원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체르노빌의 교훈은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도 일본 원전 사고 수습에 적극 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고 초기 관망으로 일관했던 유럽 국가들은 아직도 체르노빌 봉쇄시설 자금을 대는 등 엉뚱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일본이 사고를 빨리 수습하지 못한다면 주변국이 전문가를 파견하거나 공조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시민단체들도 지금 국내 원전을 멈추라는 주장만 할 때가 아니다. 국제 시민단체와 연대해 오염물질 이동 방지 같은, 정부 간에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적극 나서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정위용 교육복지부 차장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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