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문병기]국가부채 통계, 차 떼고 포 떼고 ‘두루뭉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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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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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기 경제부
문병기 경제부
경제정책에서 국가통계는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 현실을 가장 잘 반영하는 통계를 만들어 착시(錯視)를 줄이는 게 정부의 과제인데 유독 국가부채 통계만 거꾸로 가고 있다는 판단이다. 정부는 내년부터 국가부채 통계 기준을 국제통화기금(IMF)의 통합재정통계(GFS)로 바꾸기로 했지만 공기업 부채논쟁을 불러온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부채를 제외하는 방안을 고수하고 있다.

이번 국가부채 통계 개편의 핵심은 국가부채에 중앙 및 지방정부뿐만 아니라 ‘사실상 정부기관’으로 분류되는 공공기관의 부채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문제는 공공기관 부채를 어디까지 정부 부채로 포함하느냐다. 정부는 1월 말 열린 공청회에서 282개의 공공기관 가운데 판매액이 생산원가의 절반을 넘는(원가보상률 50% 이상) 곳은 제외하기로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 기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사실상 정부 업무를 대행하고 있는 공기업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는 최근 원가 보상률 기준에는 맞지 않지만 정부 사업대행이 업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10여 개 공기업의 부채를 국가부채에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LH는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 성격이 강해 이 기준에도 적용되지 않아 LH의 빚은 국가부채에 포함하지 않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LH의 설립 근거는 한국토지주택공사법에 ‘국민 주거생활의 향상 및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을 도모해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런 공적인 성격 때문에 시장성이 떨어지는 공공택지에 미분양을 감수하고서라도 사업을 해왔으며 보금자리주택과 저소득층을 겨냥한 임대주택사업을 정부를 대행해 벌여왔다. 한국토지주택공사법에 ‘LH 손실을 정부가 보전한다’고 규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굳이 다른 나라보다 깐깐한 기준을 적용해 부채규모를 늘릴 필요가 없다”며 궁색한 변명을 하고 있다. IMF 통계 기준은 공공기관의 부채를 국가부채에 포함하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상당수는 각국의 사정에 따라 일부 공기업을 제외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개편안이 효율적인 재정관리와 합리적인 국가운영이라는 국가부채 통계 개편 취지에 맞는지 의문이다. 국가부채 통계 개편은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추진해왔지만 나랏빚 규모가 늘어날 위험 때문에 ‘폭탄 돌리기’처럼 차일피일 미뤄진 과제다. 어렵게 시작된 국가부채 통계 개편이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기준으로 국가부채의 실상을 감추는 새로운 ‘폭탄 돌리기’의 시작이 돼서는 안 된다.

문병기 경제부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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