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권영한]우리가 살 길은 기술강국에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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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한 한국공학한림원 정책위원장 전 한국전기연구원장
권영한 한국공학한림원 정책위원장 전 한국전기연구원장
이달 말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출범한다. 최근 굵직한 뉴스가 많아 자칫 관심을 못 끌 수 있지만 나라의 장래를 좌우할 수도 있는 중요한 변화다.

최근 정보기술(IT)과 자동차, 첨단 융합기술 분야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고급 기술인력 찾기가 어렵다고 한다.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는데 인재 공급은 그 반대다. 문제는 인재의 공급 풀이 양적 질적으로 취약해진 데 있다.

이공계 기피와 질적 저하 문제는 말로만 떠들었지 개선된 것은 없다. 오히려 더 심화되었다. 현행 7차 교육과정과 입시제도로는 미적분을 몰라도 공대에 진학할 수 있다. 유명 공대 학생이 적분 기호를 처음 봤다는 얘기는 이제 전설이 아니다. 과학기술계의 떨어진 위상과 사기도 이공계 기피의 한 원인이다. 현 정부 들어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가 폐지된 것은 상징적 의미가 크다. 국가 연구개발(R&D)을 담당하는 정부출연연구소는 더 심각하다. 예산을 주는 정부 관료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과학자의 자존심, 몇 년째 진행 중인 거버넌스 논쟁, 어렵게 공부를 마친 박사가 비정규직이라면 어딘가 문제가 있다.

지금 세계는 새로운 대격돌의 시대를 앞두고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슈퍼’ 중국과 뒤쫓기는 미국, 민주화 바람에 자원 쟁탈전이 한창인 중동, 그리고 재정적자에 재해까지 덮친 일본. 이런 불안정한 시대에는 군사력과 에너지, 식량을 가진 나라가 살아남는다. 우리는 아직 그 반열에 들지 못한다. 겨우 기댈 수 있는 것은 기업의 기술력과 인적자원이다. 그러나 기술 경시 현상은 우려되는 바가 크다. 잘해왔으니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순진하다.

일본은 19세기 후반 메이지유신으로 각종 개혁과 서양식 공업기술을 도입해 50년 만에 세계 일류국가로 도약했다. 우리는 그보다 먼저 북학파를 중심으로 실사구시의 실학운동을 시작했지만 성리학파가 기술을 중시하지 않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20세기 후반은 우리가 기적을 만든 50년이다. 6·25전쟁의 폐허를 딛고 세계 13위권 경제대국이 됐다. 높은 교육열과 사기충천했던 공학도, 기술과 수출이 살길이라고 예견한 지도자들, 해외에서 땀 흘린 기술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965년 베트남전쟁 참전에 대한 감사로 미국이 보낸 1000만 달러를 지금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설립에 모두 투입한 일화는 우리를 감탄케 한다.

그러면 급변하는 시대를 맞아 대한민국호의 방향타는 어디로 맞춰야 할까. 2주 전 한국공학한림원 대상을 수상한, 1960년대 경제성장을 이끌던 오원철 전 대통령경제수석은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나라가 살 길은 ‘기술강국’이 되는 것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방향이 맞다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우선 IT와 에너지, 신교통, 실버, 환경, 군사 등 차세대 성장동력 기술을 세계 1등으로 만들어야 한다. 또 공학교육 혁신과 이공계 청년실업을 해결할 일자리 창출도 중요하고,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같은 현안도 과학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와 함께 새로 출범하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 거는 기대도 크다. 적어도 50년은 변치 않을 과학기술 청사진에 따라 각 부처의 기술정책과 예산을 제도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하고, 분산돼 있는 정부출연연구소도 산하에 끌어 모아 거버넌스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 현재가 되었든 차기 정권이 되었든 ‘글로벌 기술강국’을 국가정책의 상위에 두고 실천하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권영한 한국공학한림원 정책위원장 전 한국전기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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