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태동]정치권력의 유혹과 대학 총장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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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동 서강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이태동 서강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몇 해 전 어느 시사프로그램 토론에서 변호사 한 분이 “우리 사회에서 교수들이 지나친 존경을 받고 있다”고 비판했던 일이 있다. 그의 판단이 정확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더욱이 그의 말은 교수들이 국민으로부터 존경받을 만큼 우리 사회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교수들이 사회적 지위에 걸맞지 않게 올바르게 처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국민을 향해 교수들의 사회적 위상을 폄하하는 논평을 서슴없이 할 수 있었던 것은 교수들에게도 응분의 책임이 있다.

현대 사회는 옛날과는 달리 경우에 따라 대학 교수들에게 능동적인 사회 참여를 요구하며 더는 그들이 상아탑인 대학의 울타리 안에서만 머물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학 사회는 그들이 대학에서 일하는 것을 천직(天職)으로 선택했다면, 그것에 대한 긍지와 그것을 지킬 수 있는 절제력과 인간적인 위엄을 잃지 않기를 냉엄하게 요구한다.

지성 사회인 대학의 토양과 문법이 정치판의 그것들과 너무나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대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대학 밖으로 나가면 오히려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쉽게 벽에 부딪힌다. 그래서 대학에서 가르치고 연구하던 사람들이 정부나 권력기관에 나가 성공하기보다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인들이 부와 권력 지향적인 욕망에 굴종하는 누추한 모습을 보이면, 인류 문명의 산실(産室)이자 지식의 샘터인 대학은 빛을 잃고 권위가 무너지게 되며 사회는 정의의 실현과 이상에 대한 발전 동력을 잃고 병들 위험에 빠지게 된다.

대학의 명예와 긍지는 안이하게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대학 구성원들의 집중적인 노력과 인내심 있는 절제력 및 희생정신을 필요로 한다. 그동안 우리사회는 인물난 때문인지 몰라도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대학 총장을 지낸 사람들이 너무나 빈번하게 정치판에 들어가서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비롯해 ‘들러리 역할’을 하듯 일을 하고 초라한 모습을 남긴 채 물러나는 경우가 많았다.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의 좌절은 우리를 슬프게 하기에 충분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정치판의 유혹을 물리치는 용기를 보인다면 국민으로부터 갈채를 받을 것이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만이 국가와 사회를 움직이는 절대적인 주체라고 생각하는 시대는 지났다. 윤종용 삼성전자 고문의 말처럼, 역사 속에서 정치 권력자들은 세계 지도의 경계선을 바꾸었지만 인류의 문명을 일으킨 사람들은 과학자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천부적으로 부여받은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우리 사회는 정치하는 사람들을 필요로 하지만, 많은 다른 분야에서 묵묵히 일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대학에서 외길을 걷는 학자와 교육자들 또한 정치하는 사람들만큼 중요해서 자신의 역량에 따라 그들 못지않게 존경받을 자격과 권리가 있다. 왜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더 대왕의 요청을 거절하고, 아인슈타인은 이스라엘 대통령직을 수락하기를 거부했던가.

오랜 세월 동안 엄격한 자기 수련을 쌓은 학자로서 대학의 정신과 권위를 지키는 위엄 있는 기념비 같은 존재로 마지막 순간까지 남아 있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가파르고 혼돈스러운 정치무대에서 뿌리 뽑힌 사람처럼 당혹해하며 잠시 머물다 가는 삶이 옳은가 생각해 볼일이다. 대학 총장직은 대학의 정신을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자리이지 정치 무대로 나가기 위한 발판이나 징검다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태동 서강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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