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태완]알고도 실행하지 못하는 아이로 만들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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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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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완 한국교육개발원 원장
김태완 한국교육개발원 원장
최근 학생 체벌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결론부터 말하면 신체적 체벌을 해서는 안 되지만 교육적 벌은 필요하다. 학교는 아동에게 좋은 습관을 길러 주는 곳이다. 어린 시절에 나쁜 습관이 형성되면 장차 그 개인이 불행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는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우리의 부모들은 어린 자녀가 여러 사람 앞에서 떼를 쓰면 다른 사람 보기에 창피해서 어린애의 요구를 들어주는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무서운 ‘떼문화’와 ‘떼법’은 어린애가 어떤 짓을 해도 받아 주는 부모들의 너그러운 마음 때문에 형성된 것이다.

반면 서양의 부모들은 대부분 그렇지 않다. 떼를 쓰는 것이 나쁜 습관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사회 이전에 가까운 부모에게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녀가 분명히 알게 해 준다. 이것이 바른 교육이다.

공동체 생활을 하는 우리가 학교에서 배워야 하는 것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다. 학교에서 다른 학생이 공부하는 것을 방해하는 행동을 하면 그런 나쁜 행동이 습관이 되지 않도록 교사는 벌을 주어야 한다. 대부분 서양에서는 교장선생님이 교장실 앞에 세워 두고 학생으로 하여금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그 행동이 왜 나쁜지, 앞으로 그 행동을 계속할 것인지 생각할 시간을 갖도록 한다. 교장은 학생으로부터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벌을 풀어 준다. 교사가 직접 벌을 주지 않도록 하는 것은 교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감정에 따라 행동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학생은 자신의 행동을 돌이켜 보고 반성함으로써 공동체 생활에서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배우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학생은 인간적으로 성숙해지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아는 것과 실행하는 것이 분리된 교육을 해 오고 있다. 서양에서는 교육과 훈련(education and training)이 한 단어처럼 항상 같이 쓰인다. 그것은 아는 것이 훈련을 통해 체화되어야 교육이 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시험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온 우리 사회에서 부모는 자녀에게 공부만 하도록 요구하고, 나머지는 대학 들어간 다음에 생각해 보자는 경향이 있다. 교사도 어쩔 수 없이 이런 분위기에 휩쓸리게 되고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학교에서 해야 할 실험실습은 시험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예체능도 시험과 무관하기 때문에 적당히 넘어가기 일쑤다. 결과적으로 학생들은 알기는 아는데 실천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국제사회에서 필요한 글로벌 시민의식에 대해 알지만 실천하지 못하고, 거짓말이나 부정직한 행동이 좋지 않은 줄 알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광복 이후 일본 군국주의식 교육을 대체하여 들어온 미국식 신교육도 이와 같이 훈련을 중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에 써 오던 훈육(訓育)이란 단어를 일본식 교육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거의 쓰지 않고 있다. 서양의 가정과 학교에서 중시하는 훈육(discipline)이란 단어에는 ‘정해진 규칙을 지키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별해서 몸에 익히도록 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우리 가정과 학교에서 이 훈육을 포기하면 교육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체벌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훈육의 관점에서 바른 교육을 할 수 있는 교육적 차원에서 벌의 내용과 방법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김태완 한국교육개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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