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신연수]농업, 퍼주기로는 발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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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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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수 산업부장
신연수 산업부장
“매몰한 소나 돼지값을 시가로 보상해준다고요? 사업하다가 운이 나빠 부도나면 정부가 세금으로 보상해 주나요?”

어느 중소기업인들의 저녁자리는 구제역 얘기가 나오면서 냉랭해졌다. 처음엔 ‘구제역이 빨리 끝나야 한다’며 걱정하는 말이 이어지다가 화제가 보상금에 이르자 의견이 찬반으로 갈렸다.

전염병은 천재지변에 가깝고, 보상을 안 해주면 신고를 안 할 수도 있으니 제대로 보상해줘야 한다는 사람이 한편이었다. 다른 편에선 소 돼지를 수백 마리 키우는 기업형 농가에 대해서도 100% 보상해줘야 하느냐, 구제역 감염에 대한 농장주의 책임을 더 엄격히 따져야 하는 것 아니냐 등의 의견이 강했다.

구제역, 정부만 탓할 수 없다

결국 결론 없이 모임은 끝났다. 이번 구제역을 겪으며 달라진 풍경이다. 농민이나 농업에 대해 이처럼 비판적인 분위기를 전에는 본 적이 없다.

그동안 도시인들에게 농촌은 마음의 고향이었고, 농민은 언제나 감싸줘야 할 대상이었다. 우리들 대부분이 농촌 출신이거나 어렸을 적 친가나 외가 시골 마당에서 뛰어놀던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농촌으로 봉사활동을 가서 ‘출구가 보이지 않는 농촌의 가난’을 끊어낼 방안을 토론하며 밤새운 경험이 없는 중장년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 후 2000년대 후반까지 농산물 시장 개방과 보상을 둘러싸고 농민과 시민단체들의 도로점거, 농성시위가 이어질 때도 동정론이 강했다. 농업에 관한 한 농민은 항상 선(善)이고 정부나 외국은 악(惡)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방역작업을 하다 순직한 공무원 8명, 지금까지 직접 피해액만 3조 원, 도살처분한 가축 340여만 마리, 게다가 아직은 피해 규모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환경 재앙…. 이런 사상 최악의 구제역이 동남아 여행을 다녀온 축산농가에서 시작됐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면서부터다.

지난해 5∼11월 해외를 다녀온 축산 관계자는 2만6000여 명, 이 중 9400여 명이 신고도 하지 않고 검역도 받지 않았다. 일부 농장주는 축사에 들어가면서 소독도 제대로 안 했다고 한다. 구제역 발생 신고를 늦추거나 매몰처분한 가축 수를 부풀렸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물론 이런 도덕적 해이를 보인 농가는 극히 일부일 것이다. 대부분의 농가는 죽을힘을 다해 방역을 했지만 불가항력적인 역병에 자식 같은 가축들을 잃고, 생계 수단마저 잃었다.

그럼에도 이번 재난을 보는 국민의 시각은 예전 같지 않다. 구제역 확산의 책임으로 정부의 어설픈 대응과 함께 농가의 방역의식을 문제 삼는 것이다.

농촌에 대한 미신에서 벗어나야

그러고 보면 아직 많은 사람이 농촌에 대한 미신에 사로잡혀 있는지 모른다. 몇 가지 사실을 보자. 농촌은 도시보다 못살까? 2009년 도시근로자 소득은 연평균 4603만 원. 농가소득은 3081만 원으로 도시의 70%에 불과했다. 그러나 70, 80대 노인을 뺀 40, 50대 농민의 소득은 4300만∼4400만 원대로 도시근로자와 비슷했다.

강원도에서 농장 8개를 ‘경영’하는 한 농가는 이번 구제역 보상금으로 111억 원을 받게 되고, 경북 안동의 형제 농장주는 155억 원을 받을 예정이다.

농산물 시장을 개방하면 우리 농민이 다 망할까? 2001년 쇠고기 수입 개방 이후 국내 한우와 육우는 품질이 좋아지고 값도 비싸졌다. 쇠고기 시장은 두 배로 커졌다. 1995년 1조7756억 원이던 국내 한·육우 생산액은 2009년 4조948억 원으로 늘었다.

농촌은 지금보다 더 잘살아야 한다. 다만, 보호와 지원만이 능사는 아니다. 농촌이 더 강한 경쟁력을 갖도록 이젠 농업정책의 틀을 바꿀 때가 되었다.

신연수 산업부장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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