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현진권]차등 교통범칙금, 이게 공정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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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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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권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
현진권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
공정사회가 현 정부의 통치 철학으로 자리매김한 후 많은 정책이 이 틀 속에서 논의되고 있다. 며칠 전에는 “교통법규를 위반한 생계형 픽업 차량과 벤츠 승용차에 대해 동일한 교통범칙금을 부과하는 것이 공정사회 기준에 맞겠느냐”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이 있었다. 양 극단의 차량을 공정사회라는 조명에 비추면 불공평한 제도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게 공정사회라는 개념이 주는 논리의 함정이다. 공정이란 본질적으로 규범적인 개념이어서 주관적이고, 논리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인 용어이기 때문이다.

생계형 운전자 위반 부추길 우려

교통범칙금이란 교통법규를 위반했을 때 부과하는 일종의 벌금이다. 위반행위가 부과기준이 되며, 위반자의 경제적 지위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위반행위와 경제적 지위와는 논리적 혹은 실증적 연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고소득층이나 고가 승용차 소유자가 저소득층이나 저가 승용차 소유자보다 위반행위가 더 많다면, 승용차 유형이나 소득과 연계해서 벌금을 부과할 수 있는 경제적 논리가 있다. 그러나 위반자와 이들의 경제적 지위와는 아무런 연계가 없다. 오히려 생계용 택시의 위반행위가 더 많다는 것이 일반적 인식이며, 생계용 혹은 저소득층이기 때문에 벌금을 낮추면 이들의 위반행위를 더욱 부추기는 폐단이 발생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중대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범법자의 경제 및 사회적 지위에 따라 형량이 조정되기도 한다. 사회 지도자급 인사에 대해 일반 범법자보다 훨씬 높은 중형을 선고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교통법규 위반은 중대한 범죄행위가 아니고,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범할 수 있는 과오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소득이 많거나 고가의 승용차를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교통범칙금을 더 내야 할 법적 논리는 없다.

교통범칙금의 차등 부과는 집행과정에서도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우선 경제적 기준을 어디에 잡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소득을 기반으로 한다면 소득이 투명하지 않은 고소득 자영업자들 간의 불공평성 문제가 발생한다. 아울러 유리 지갑인 봉급생활자와 고소득 자영업자들 간 세 부담의 수평적 불공평성 문제가 다시 불거지게 된다. 또한 승용차 유형을 기반으로 한다면 소득이 높지 않은 고가 승용차 소유자는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심각성의 차이는 있지만, 지난 정부에서 종합부동산 세제를 도입했을 때 나온 ‘세금이 높으면 집을 팔고 이사 가면 된다’는 식의 논리가 다시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경제적 지위와 연계해서 정부가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공정사회인 것으로 언뜻 생각할 수 있다. 극단적으로 생각해서, 모든 제도를 소득과 연계하면 더 공정사회가 되는 것일까. 같은 물건을 사도 구매자의 소득수준에 따라 가격이 다르고, 소비세를 모두 소득수준과 연계하면 더 공정한 사회처럼 느껴질 수 있다.

‘공정’이라는 잣대의 오류 알아야

이런 사회에서는 개인들이 더 열심히 일할 유인이 없어지고, 이는 시장경제의 기본 틀을 부정하는 것이다. 공정사회를 쫓으려다 활기찬 사회 분위기를 훼손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공정사회의 틀을 어디까지 적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오래전에 소득과 연계해 정착된 제도가 소득세제이다. 소득이 높은 사람이 더 높은 세율의 세금을 부담하는 것이 공평하다는 응능원칙을 모든 사람이 인정하고 있다.

공정이란 잣대는 불완전한 개념이며, 감성이 우선하는 폐단이 있다. 가장 범하기 쉬운 오류는 소득을 기반으로 모든 제도를 만들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공정한 경쟁시장의 결과인 소득이 감성적 공정사회라는 잣대로 무제한적 제도로 만들어지면 그 사회는 경제적으로 불공정한 사회가 된다.

현진권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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