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조성하]스키에서 나온 두 개의 금메달

  • Array
  • 입력 2011년 2월 21일 03시 00분


코멘트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1960년 2월. 미국 서부 스코밸리(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제8회 겨울올림픽이 한창이었다. 닉슨 부통령이 개막을 선언했고 선수촌에는 태극기도 휘날렸다. 사상 처음 참가한 한국선수단(선수 7명, 임원 3명)이 올린 것이다.

임경순 씨(81)도 그중 한 명. 유일한 알파인스키 선수였다. 그의 성적은 초라했다. 대회전 탈락, 활강 61위, 회전 40위. 그나마 터키, 레바논 덕에 꼴찌는 면했다. 그도 그럴밖에. 국내 훈련은 미군이 쓰던 낡은 스키로 하고, 기술이래야 슈템보겐 같은 초보회전이 전부였으니. 리프트도, 기문 박힌 코스도, 높은 산(해발 2000m급)에서의 질주도 난생처음이었다. 게다가 그해 겨울 한국은 눈 가뭄이었다.

스키도 없었다. 중간 기착지 도쿄에서 사려던 계획이 입국 거부로 무산됐다. 미국 팀 감독이 아니었다면 출전도 못할 뻔했다. 딱한 사정을 알고 얻어준 경기용 스키 2대 덕분이었다. 회전, 점프 등 고급기술도 즉석에서 배웠다. 당시 미국 최강 덴버대 감독 윌리 섀플러 씨가 자원 봉사했다. 모든 게 초치기였다. 그런 만큼 난관의 연속이었다. 연습 중 넘어져 병원신세까지 졌다. 한국 최초의 겨울올림픽 활강경기는 그렇게 준비됐다.

드디어 스타트. 회전과 점프는 언감생심이었다. 급경사에서는 킥턴(제자리에 선 채로 방향을 바꾸는 초보기술)을 하고, 피니시 300m 전방에서는 넘어졌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일어나 다시 달려 피니시를 통과했다. 이 장면은 미국 전역에 중계됐다. 스코밸리 대회는 TV로 중계된 최초의 겨울올림픽이었다. 수많은 미국인이 지켜봤다. 선수에겐 창피였다. 하지만 시청자에겐 감동이었다. 공포천만의 올림픽 활강코스를 한국인 초보가 어설피 통과하는 모습은.

올림픽 성적은 메달이 말해준다. 그날 임경순만은 달랐다. 스포츠전문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는 ‘금메달감’으로 기록했다. ‘참가 자체에 의의’를 둔 쿠베르탱 남작의 올림픽정신과 용기로 점수를 매긴다면 그 어떤 선수도 넘어설 수 없을 것이라는 찬사로. 당시 경기 장면은 다큐멘터리로도 만들어져 많은 이를 감동시켰다.

51년 후인 지난달 31일. 겨울아시아경기가 열린 카자흐스탄에서는 ‘진짜’ 금메달이 나왔다. 김선주(26)의 여자활강 우승이다. 활강은 스키경기의 꽃이다. 스키기술의 총아인 데다 두둑한 담력까지 요구해서다. 국제대회 활강 우승은 한국스키 90년 만의 경사다. 그래서 값졌다. 기대하지 않았기에 더욱 놀라웠다. 그녀가 예상 메달리스트 명단에조차 없었다는 것도.

‘활강’에 관한 한 한국은 불모지대다. 국제규격(고도차 800m)코스조차 없다. 선수가 있을 리 만무하다. 김선주라고 다를까. 스타트라인에서 심정은 참담했을 것이다. 51년 전 임 선수와 다를 바 없이. 그녀 역시 다운 힐은 입촌 후 현장 초치기 연습이 전부였다.

활강코스도, 선수도 없는 나라가 겨울올림픽 유치에 뛰어들었다. 유치위는 정선의 중봉에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본대회장과 30분 거리’(유치위 기준), 고도차 800m 이상(국제규격)’의 기준을 충족할 적지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중봉의 삼림훼손을 걱정해서다. 겨울올림픽을 유치하면 활강경기장은 반드시 만들어야 하는데…. 이젠 숲 훼손 최소화 방안도 함께 준비할 때다.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