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성봉]장관은 회계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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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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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봉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조성봉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10일 자신이 회계사라며 직접 기름값 원가를 계산해 보겠다고 했다. 또 정유산업을 자연과점으로 규정하고 정부의 개입이 정당하다고 말했다. 자꾸 올라가는 기름값을 두고 국민들이 정부에 세금을 내려야 한다고 하자 정부는 문제의 원인이 정유회사에 있으니 따져 보아야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기름값 원가 계산은 사실상 불가능

그러나 기름값은 수많은 요인에 영향을 받으므로 이를 파악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원유가가 오르면 기름값도 오르지만 반대로 떨어지면 기름값도 떨어져야 한다는 식의 이른바 ‘대칭성’ 논란도 판가름하기가 쉽지 않다. 원유 구입 대금은 구매시점으로부터 몇 달 후 지급하는 유전스로 결제되므로 상당한 시차가 존재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원유가가 상승하는 시기인지, 하락하는 시기인지에 따라 다를 수 있고 상승기라도 급격한 상승기인지, 완만한 상승기인지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원유가격에 대한 데이터를 일간, 주간, 월간 중 어느 것을 활용하느냐에 따라서도 다르다. 환율도 수시로 변하며 영향을 주므로 이것도 검토해야 한다. 세금 때문에 이 같은 대칭성이 깨지기도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여러 석유제품은 원유를 투입해 일련의 화학공정을 거쳐 동시에 생산되므로 중유, 휘발유, 등유, 항공유, 액화석유가스(LPG) 등으로 구분하여 각각의 원가를 산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공급 개념에 기초한 원유가에 연동하여 기름값의 추세를 살피는 것보다 수요 개념까지 반영된 국제시장 제품가격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시장의 원리를 제대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기름값의 결정과정을 살피는 것이 간단하지 않으므로 정부도 기획재정부와 지식경제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여러 부처 공무원과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석유가격 태스크포스를 통해 검토하고 있다. 회계사가 원가계산을 하듯 쉽게 알 수 있는 일은 아닌 것이다. 그렇게 쉽고 간단한 일이라면 정부 공무원과 전문가들은 무능하거나 지금까지 일 안 하고 놀았다는 말로 들린다.

정유산업을 자연과점이라고 규정한 것도 문제다. 경제학에서는 자연과점이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아 최 장관이 의도한 것은 자연독점(natural monopoly)이라고 짐작된다. 자연독점은 보통 전력과 통신, 가스, 철도 등 네트워크산업에서 설비 운영자가 자연적으로 독점이 되기 마련인 경우를 지칭한다. 이때 정부가 경쟁을 유도하면 전력의 송배전선, 통신선, 가스배관망 등에 대한 중복투자가 생기고 평균 생산비가 올라가기 때문에 독점을 허용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 정부는 이를 공익산업으로 규정해 개입하며 원가를 감시하고 가격을 규제하는 것이 정당화된다.

‘자연과점 규제’ 발언은 시장 역행

그러나 정유산업은 자연독점 산업이라고 말할 수 없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정유산업은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에 의해 운용되고 정부가 가격 결정에 개입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1997년 유가를 전면 자유화하여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기름값이 오르는 기미만 보이면 정부는 여러 간접적인 방법으로 정유회사에 압력을 행사한다.

정부가 할 일은 세금을 내리는 것이지 이미 자유화된 시장의 원가를 다시 들춰내고 기업에 으름장을 놓는 것이 아니다. 어떤 형태로든 가격을 규제하면 그 부작용은 고스란히 소비자들이 떠안게 된다. 시장의 수급에 의해 결정되는 기름값을 무작정 내리도록 한다면 이번 겨울 전력 공급이 아슬아슬했던 것처럼 공급이 모자라 주유소에 자동차들이 긴 줄을 서야 할지도 모른다. 시장이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원칙을 지키는 것이 회계사 역할보다 중요하다.

조성봉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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