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이우신]철새에 먹이 주면 AI 방지에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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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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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신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
이우신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
한반도는 유라시아대륙 동남단에 위치해 많은 철새들의 종착역과 정거장 역할을 해 왔다. 봄의 한반도는 동남아시아로부터 오는 꾀꼬리와 뻐꾸기 흰눈썹황금새 중대백로 등 여름철새의 번식지다. 봄과 가을에는 호주 뉴질랜드와 시베리아 알래스카를 왕복하는 도요물떼새 같은 나그네새들의 중간 휴식지가 된다. 가을과 초겨울에는 시베리아에서 오는 가창오리와 청둥오리 쇠기러기 두루미 등과 같은 겨울철새의 월동지로서 한국은 중요한 위치에 있다.

2010년 환경부에서 실시한 ‘겨울철새 동시센서스’에 따르면 지금 한국에 와 월동하는 겨울철새는 204종 145만여 마리다. 가창오리가 44%인 64만여 마리, 청둥오리가 11%인 16만 마리에 이르고 흰뺨검둥오리와 쇠기러기 큰기러기 등이 그 다음 순서로 많이 관찰됐다. 많은 사람은 겨울철새의 수가 적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 인구가 5000만 명에 이르는 것과 비교하면 월동하는 겨울 철새 수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지난해 12월 29일 충남 천안에서 시작해 전북 익산 고창, 전남 영암 나주 화순, 경기 안성 이천 등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닭과 오리 등에서 발생하고 있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 따르면 가창오리와 청둥오리, 수리부엉이 등의 야생조류에서도 AI가 발생했고, 충남 천안과 전북 익산 등에서 검출된 AI 바이러스와 야생조류에서 검출된 AI 바이러스의 유전자는 99.7%가 일치한다고 한다.

국내로 건너와 월동하는 오리류를 비롯한 일부 겨울철새가 AI에 감염돼 있고, 이들을 매개체로 해 전국의 닭과 오리 등 가금농장에 AI가 산발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에 따라 방역당국은 일반인과 농민에게 철새도래지 등 야생조류 서식지 출입을 차단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이러한 영향으로 지방자치단체는 물론이고 자연보호단체 심지어 조류보호단체도 철새에 대한 접근이 힘들어진 데다 후원자도 찾지 못해 오리류와 기러기류, 두루미류 등 겨울철새에게 먹이를 주지 못하고 있다.

올해 겨울은 유난히 추워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한파가 지속되고 있다. 또 전국적인 강설로 국토가 온통 눈으로 덮이면서 오리류를 비롯한 겨울철새는 주된 먹이인 벼 낙곡을 먹을 수 없어 상당수가 굶주림으로 폐사하는 등 고단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게다가 추운 겨울을 이기기 위한 지방과 단백질 공급원조차 차단돼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한 예로 텃새이자 겨울철새인 물닭은 수초와 작은 물고기, 연체동물 등을 주로 먹는데 최근 적설과 한파로 적절한 먹이를 먹지 못해 죽은 오리의 시체를 먹는 비정상적인 행동마저 관찰되었다. 철새들이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봄에 번식지인 시베리아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건강하지 않은 상태에서 번식 성공률이 낮아질 것으로 우려된다.

AI 전파를 우려해 철새 접근을 막으면서 이들이 먹이를 먹지 못하는 일은 단순히 철새의 ‘급식복지’의 저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혹독한 자연환경 조건에서 겨울철새가 먹이를 제대로 먹지 못하면 다양한 문제로 이어진다. 기아에 시달리면서 각 철새의 건강상태가 악화되면 AI에 감염될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AI에 감염되더라도 먹이를 잘 먹어 ‘섭생’이 우수하면 빨리 병을 이겨낼 수도 있다. 감염된 채로 먹이가 부족해 이곳저곳으로 먹이를 찾아 다니다보면 자연히 바이러스 전파 위험도 커질 수밖에 없다.

철새들에게 최소한의 급식을 허락해 달라는 호소는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우신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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