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표몰이용 대선공약’ 후유증 앓는 과학벨트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20일 03시 00분


2007년 11월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후보는 과학기술정책간담회에서 “세종시와 대덕연구단지, 오송 바이오산업단지, 오창 과학산업단지를 광역경제권으로 묶는 한국판 실리콘밸리를 건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공약은 한나라당의 ‘권역별 정책공약집-충남편’에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구축’이라는 항목으로 명기돼 있다. 그러나 정부는 작년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에서 부결되자 과학벨트 입지 선정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임기철 대통령과학기술비서관은 이달 6일 기자간담회에서 “전국의 후보지를 대상으로 선정 기준이나 평가항목 등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며 “지금은 공약사항에 변화가 올 수밖에 없는 여건”이라고 말했다.

과학벨트는 향후 7년간 3조5000억 원을 투자해 기초과학연구원과 중이온 가속기 등 대형 기초연구시설을 설치하는 사업으로 지역경제 활성화도 기대할 수 있다. 과학벨트의 입지선정 문제는 지난해 세종시 사태의 ‘재판(再版)’으로 흘러갈 조짐을 보인다. 지난해 세종시 수정안을 놓고 논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야당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도 계파별 정치 논리가 득세했다. 이번에도 과학벨트가 들어설 입지의 선정기준을 꼼꼼히 따지기보다는 지역별 정치 논리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경기, 대구·경북, 광주·전남, 전북에서도 유치 의사가 강하다. 충청권 주민은 “대통령의 공약을 이행하라”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비(非)충청권 지역에선 충청권이 세종시에 이어 과학벨트까지 가져가는 것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여야 후보들이 정치공학적 셈법에 따라 국책사업을 특정 지역 표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쓰면서 국가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세종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세종시 문제로 대선에서 재미 좀 봤다”고 했지만 수도 분할에 따른 낭비와 비효율성은 우리를 두고두고 괴롭힐 것이다. 여야는 2007년 대선에서 세종시 이전 이후 행정부처 대부분이 내려가 비게 될 경기 과천의 유휴 공간 대책을 마련해야 했지만 제대로 신경을 쓴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번 국민에게 약속한 공약을 “이제 없던 일로 하자”며 뒤집는 것은 쉽지 않다. 이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지역 갈등도 더 깊어질 것이다. 민주당에서 쏟아내는 ‘무상(無償) 복지 시리즈’에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것도 내년 총선과 대선까지 이어질 이슈이기 때문이다. 달콤한 공약을 남발하는 정치권을 탓하기 전에 국민들이 눈을 부릅떠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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