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영]저커버그가 되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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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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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문화부 차장
이진영 문화부 차장
미국 팰러앨토의 투자자와 만나는 술자리에서 그는 혼자 스프라이트를 마셨다. 별다른 뜻은 없었다. 법적으로 술을 마실 수 없는 스무 살 청년이었을 뿐이다.

티셔츠에 아디다스 슬리퍼를 끌고 다니던 괴짜 대학생이 아이디어 하나로 정보기술(IT)계의 블록버스터를 만들어 내고 최연소 억만장자가 된 이야기는 드라마틱하다. 아니나 다를까 마크 저커버그(27)의 페이스북 성공 비화를 다룬 영화 ‘소셜네트워크’는 골든글로브 4관왕을 차지했다.

그러니 “저커버그가 우리나라에서도 나올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도 “방해나 말라”며 오히려 욕먹은 이명박 대통령으로선 억울할 만도 하다. 대통령의 저커버그 발언이 나오기 전부터 업계에선 ‘저커버그가 한국에서 못 나오는 이유’에 대해 말들이 있었다. 대부분 창의적인 기업 활동을 가로막는 답답한 규제 환경을 꼬집는 내용들이었다.

그런데 최근 페이스북과 한국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싸이월드를 비교하면서 이들이 성장 과정에서 만난 투자자가 성패를 갈랐다는 분석이 나왔다. 1999년 설립된 싸이월드의 창업기는 5년 후 생겨난 페이스북 못지않다. 저커버그는 하버드대 출신이고, 싸이월드의 창업자들은 KAIST의 천재들이었다. 무서운 속도로 이용자가 늘어 ‘싸이질’이 열병처럼 유행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거기까지다. 성공이 돈을 부를 때 페이스북은 좋은 투자자를 만났다. 이들은 사이트의 운영이나 기업 문화엔 손대지 않았다. 저커버그는 여전히 아디다스 슬리퍼를 신었고, 명함엔 ‘사장입니다…제길’이라고 써서 다녔다. 싸이월드는 달랐다. SK커뮤니케이션즈에 인수됐고, 벤처를 이끌던 핵심 인력들이 하나 둘 떠났으며, 대기업 사람들과 그들의 문화가 빈 자리를 채웠고, 페이스북의 그늘에 가려진 존재가 됐다.

미국의 경쟁자 마이스페이스가 2005년 5억8000만 달러에 뉴스코퍼레이션에 인수됐을 때도 저커버그는 웃었다. 대기업이 마이스페이스를 망쳐놓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과연 골드만삭스는 최근 페이스북의 기업 가치를 500억 달러로 평가했고, 마이스페이스는 전체 직원의 절반 수준인 500명을 감원한다고 발표했다. 단기 수익만 좇는 대기업과 문화적 충돌을 겪다 추락했다, 뉴스코프의 유산을 청산하지 않는 한 가망이 없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투자자를 잘 만나서’라는 해석은 뒤집어 보면 ‘투자자를 잘 골라서’가 된다. 치고 빠지기 식 투자 행태에 휘둘리지 않고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보다 저커버그 본인에게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스무 살의 저커버그는 가족이 다수의 지분을 소유하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경영하는 워싱턴포스트에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훗날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며 이렇게 털어놓았다. “실리콘밸리식 게임을 하고 싶지 않았다. 벤처투자사의 돈을 받고 상장하거나 빨리 회사를 팔아버리거나 성장 속도를 가속화하기 위해 전문 경영인을 데려다 앉히는 통속적인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경쟁자가 수익률에 매달리는 동안 저커버그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포부로 성장과 기술에 집중했다. 스무 살짜리 창업자가 직원 일곱 명의 신생 회사에 달러뭉치를 들이대는 투자자들 앞에서 중심을 잡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만한 배포가 없었다면 저커버그는 ‘저커버그가 나오는 미국’에서도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진영 문화부 차장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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