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장영수]독설 정치에 누가 방울을 달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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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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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총기난사 사건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우리와 미국이 다르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수시로 총기난사가 문제되는 가운데서도 일반인의 총기 보유를 금지하지 않는 미국인의 고집스러움도 그렇고, 이러한 사건을 계기로 정치 독설을 자제하자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는 모습도 그렇다. 미국이 오늘날 민주주의의 중심국가로 널리 인정되는 이유는 완벽한 형태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때문이 아니라 항상 유연하게 더 나은 대안을 찾아내는 정치적 기초를 갖췄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연상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美총격사건 계기로 자성의 목소리

사실 민주정치란 말의 정치이다. 민주정치의 핵심은 국민의 지지를 얻는 데 있으며, 이를 위해서 다른 힘을 동원하지 않고 오로지 말로써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군대의 힘이나 경찰권 검찰권을 비롯한 권력을 동원하는 정치가 민주정치일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금력을 동원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도 부패하고 타락한 정치일 뿐, 진정한 의미의 민주정치일 수 없다.

민주주의가 말의 정치라고 하여 말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자신에 대한 허위 또는 과장된 소개를 통해 국민의 지지를 얻고자 하는 시도가 문제되는가 하면 때로는 자신의 정치적 적수에 대한 흑색선전이 문제를 야기한다. 이에 미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극단적인 표현을 이용하여 정치적 적수를 비난하는 독설 내지 막말도 드물지 않게 문제되고 있다.

일단 현행법상으로 보면 사실 자체를 왜곡하는 허위 과장 표현이나 흑색선전은 위법인 반면에 특정 사실을 지목하여 원색적 비난을 퍼붓는 독설은 명예훼손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위법이 아니라고 인정된다. 말의 정치인 민주주의에서 어느 정도까지 말이 허용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기준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법적으로 허용되는 정치 독설이 총기 난사의 원인이 되었다면 혹은 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정치 독설을 자제하자는 미국의 논의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도를 넘어선다는 비난을 받는 정치 독설에 대한 반성의 계기가 될 수 있다.

개인의 총기 소유를 광범위하게 허용하는 미국과 우리나라는 사정이 다르다는 점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정치권을 물들이는 폭력사태의 이면에는 원색적인 막말 공방을 통해 격앙되었던 감정이 깔려 있다는 점에서 정치 독설의 자제 필요성은 우리나라에서도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 독설을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미화할 필요는 없다. 민주주의의 핵심이 국민의 의사를 결집하고, 정책대안에 대한 지지를 얻어내는 과정이라고 볼 때, 독설을 통한 자극적 표현이 민주주의의 필수적 요소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독설이 빠진 말의 정치가 공허해지리라고 예상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정당하지도 않다.

자극보다 정책대안으로 승부해야

진정한 민주정치에 필요한 점은 독설적 표현으로 눈길을 모으는 일이 아니라 사안별로 정확한 이해와 적절한 대안, 그리고 합리적인 표현으로 정리해내는 것이다. 이미 정치 독설과 정치폭력에 식상한 국민은 내용이 부실한 독설보다는 내용이 충실한 정책적 대안에 더 많은 관심과 지지를 보일 것이다.

이제 우리도 정치문화에 대해 진지한 반성을 해보자. 과연 우리의 정치문화는 폭력을 유발하는 독설의 정치문화가 아닌지, 만일 그렇다면 어떤 대안을 찾아야 할지…. 누가 더 먼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는지를 국민이 지켜볼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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