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윤석민]종편, 지금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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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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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편성채널 승인 작업이 4개 사업자 선정으로 마무리됐다. 천로역정처럼 길고 험난한 과정이었다. 서슬 푸른 신군부의 군홧발 아래 강제 도입된 미디어 간의 칸막이를 없애자는 미디어법 개정에 대해 진보로 자칭하는 이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반대했다. 미디어 빅뱅시대를 맞아 세계 주요 미디어가 신문 방송 인터넷 스마트폰 등 다양한 미디어 영역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상황에서, 신문은 신문만 하고 방송은 소수가 지배하는 현 체제로 남겨둬야 한다고 악을 썼다. 지상파방송 칸막이 제거는 결국 좌절되고 대안으로 떠오른 게 종편채널이었다.

시장 열악하지만 콘텐츠로 경쟁을

하지만 이들은 집요했다. 공영방송의 수신료 현실화 방안조차 종편 종잣돈 음모설 앞에 기형적으로 뒤틀렸다. 정책당국마저 눈치를 살피느라 질질 시간을 끌었다. 종편사업이 시작되는 것은 이처럼 할퀴고 뜯긴 생채기 위에서다. 종편사업권을 딴 사업자 입장에서 기쁨은 잠시, 그들을 주시하는 적대적 시선과 난관을 인식해야 한다.

시장의 현실은 실제로 황량하다. 우리 방송시장은 미국의 5%, 일본의 30% 수준에 불과하다. 이 협소한 시장은 다시금 플랫폼과 채널시장으로 갈라지고 그 각각이 소수의 사업자에 의해 장악됐다. 유료방송으로 좁혀 보면 상황은 한층 열악하다. 요금은 세계 최저 수준이고 광고시장은 포화 상태다. 많은 투자가 요구되지만 사업성은 불확실하다.

하지만 주사위는 던져졌다. 종편이 나아갈 길은 오직 하나, 경쟁력 있는 콘텐츠다. 우리 방송에 재미있고 유익한 볼거리가 참 많아졌다는 인식, 방송 뉴스가 이렇게 깊이 있고 흥미로울 수 있구나 하는 평가를 창출해야 한다. 방송의 질을 높이고 시장을 키우는 기함(flag ship)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정책당국 역시 사업자 승인으로 모든 짐을 벗었다고 판단하면 오산이다. 종편이 시장에 안착해 애초의 목표를 구현하기까지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동시에 방송시장의 성장과 공정경쟁을 저해하는 난개발 상태의 정책을 정비해야 한다. 국가기간방송에 해당되는 의무편성을 종합편성 및 보도전문채널에 적용하는 것은 분명 논리적 문제가 있다. 종편채널의 채널 사용료에 대해서도 원칙이 없어 자칫 지상파와 케이블 시스템 사업자(SO) 간에 빚어진 법정다툼이 종편에까지 확전될 우려가 있다. 유료방송 채널 편성 및 대가 산정 정책이 속히 체계화되어야 한다.

방송광고 영업도 마찬가지다.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의 방송광고영업 독점대행이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은 후, 대안에 대한 논의는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채 공전했다. 이 상황에서 종편 도입을 기화로 자칫 방송광고 영업행위에 대한 공적 규제가 무력화되고 모든 방송사가 자신의 매체력을 총동원해 광고를 직판하는 난장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 시의적절한 정책을 통해 광고영업 과열경쟁이 방송 품질의 저급화, 방송시장의 황폐화를 초래하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

미디어 선진화의 길 활짝 열어야

다시 돌아보자. 왜 종편을 도입하려 했는가? 칸막이 규제로 숨통이 막힌 미디어 시장에 투자를 유인하고, 서비스의 품질과 다양성을 제고하며, 이를 통한 부가가치가 다시금 투자를 불러오는 선순환 구조를 작동시키고자 함이었다. 미디어를 글로벌 경쟁력을 지닌 사업자로 업그레이드시키고, 사회적 소통을 진작시켜 선진화된 민주시민사회 실현을 앞당기려 함이었다. 미디어 진출을 꿈꾸는 젊은이에게 일자리 기회를 제공하고자 함이었다.

이제 꿈을 향한 첫걸음이 시작되었다. 미디어 선진화의 발목을 잡아 왔던 이들이 다시금 심사 결과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무책임한 의혹을 제기한다. 이 지겨운 이들과 무슨 말을 섞을 것인가. 더는 말이 필요 없게 결과로 보여주어야 한다. 2011년 새해, 종편사업자와 정책당국의 각별한 다짐과 노력을 바라 마지않는다.

윤석민 서울대 교수 언론정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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