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황규인]교육철학만 앞세우고 행정엔 뒷짐져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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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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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 한 중학교에서 2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20대 여자 선생님을 만났다. 이 선생님에게 “진보 교육감 취임 한 학기 변화가 피부에 와 닿느냐”고 물었다. 별 생각 없이 물었는데 ‘철학과 행정의 괴리’라는 철학적(?) 답변이 돌아왔다. 학자 출신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자기 철학만 앞세운 나머지 행정 곳곳에 구멍이 뚫렸다는 의견이었다.

이 선생님은 “남들이 ‘일제고사’라고 말하는 시험을 반대하는 철학은 학자의 권리다. 그러나 행정을 책임지는 교육감이라면 ‘시험을 보지 말라’고만 할 게 아니라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게 행정가의 의무”라고 말했다.

21일 예정했던 중학교 1, 2학년 대상 전국연합 학력평가를 보지 않은 걸 두고 한 말이었다. 서울지역 학생들은 이날 시험 대신 ‘문예체 인성교육’을 했다. 이 선생님은 “시험 거의 한 달 전 시험을 보지 않는다고 알렸다면 미리 대체 프로그램을 섭외해 일선 학교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행정 절차’가 필요했던 것 아니냐”며 “몇몇 학교에서 생색을 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의 학교는 이날 무얼 해야 할지 몰라 허둥지둥했다”고 말했다.

체벌 전면 금지에 대한 생각도 비슷했다. 이 선생님은 “내 철학도 체벌 금지 찬성이다. 그러나 행정적으로 무엇인가를 ‘전면 금지’하는 건 전면적 대안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며 “철학은 옳고 그른 것을 따지지만 행정은 실현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따져 실현 가능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우선 아니냐”고 말했다.

교복 및 두발 자율화에 대한 의견은 듣지 못했지만 이 선생님이라면 “전면 무상 급식을 실시하는 주요 철학이 가난한 학생들의 ‘낙인 효과 방지’인데 교복 자율화는 빈부 차이를 오히려 더 드러내는 것 아니냐. 철학의 일관성을 떠나 행정의 일관성이 의심된다”고 하지 않았을까.

사실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도 이 철학-행정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장관은 자기 교육 철학을 시험해 보는 자리가 아니다”고 이 장관을 비판한 적이 있었다. 다른 곳도 아닌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연 세미나에서 ‘자율형사립고는 실패한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왔는데도 이 장관은 “학계의 공통 견해라고 보기 어렵다”며 학자로서 자기 교육 철학을 앞세웠다.

교육 행정은 한 사람의 일생을 결정적으로 좌우할 수 있다. 교육 행정에서 철학적 가치가 중요한 이유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독선은 정말 위험한 것’이라는 기본 철학부터 행정적으로 보여줘야 하는 게 아닐까.

황규인 교육복지부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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