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李대통령, 안보태세 재구축에 명운 걸 때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4일 03시 00분


연평도 사태는 우리 국민의 대북(對北) 경각심과 안보의식을 크게 높였다. 8개월 전 천안함 폭침 때 일부 세력이 과학적 조사결과를 왜곡해 상당수 국민을 혼란에 빠뜨렸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안보전문가들은 길게 볼 때 연평도 피격이 안보에 양약(良藥)이 될 수 있다는 기대 섞인 전망을 하고 있다.

그러나 연평도 사태 이후 청와대 군 국가정보원이 보여준 지리멸렬한 모습은 국민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앞으로 이들이 과연 국가와 국민을 안전하게 지켜낼 수 있을지 강한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태는 우리 안보의 고질적 문제들을 총체적으로 보여줬다. 도발 징후에 대한 정보수집과 판단 및 활용능력에서부터 도발 직후 일선 부대의 대응, 합참 및 청와대 참모와 대통령의 대북 전략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핵심을 짚어내지 못했다.

“확전은 막아야 한다”는 초기 청와대 발표가 빚어낸 혼선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볼 수 없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과 군의 상호불신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명박 대통령의 군에 대한 불신이 극명하게 나타난 사례로는 올해 9·28서울수복 및 국군의 날 기념식 때 대통령 연설이 꼽힌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군대다운 군대’를 강력히 주문했다. 이에 대해 상당수 현역 및 예비역은 “6·25 참전국 정부 대표와 외교사절이 다수 참석한 자리에서 군에 대한 깊은 불신을 나타내 군의 자존심에 상처를 냈다”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원세훈 국정원장의 “연평도 도발 징후를 8월에 감청을 통해 알았다”는 국회 발언은 상식 이하라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국정원은 그 정보를 어떻게 판단했으며, 판단 결과를 청와대 및 군과 어떻게 공유하고 어떤 대책을 요구했는지 불분명하다. 평소 흔히 있는 첩보 수준 정도로 판단했다면 국회에서 왜 굳이 공개했는지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천안함 사태 때와 똑같이 연평도 피격 직후에도 대통령과 안보관계 장관들이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회의하는 모습이 TV로 실시간 공개됐다. 연평도 피격 현장도 시시각각 TV에 생중계됐다. 김정일 집단은 남한 TV만 보고도 장시간 많은 비용을 들여도 손에 넣기 어려운 정보들을 거저 수집했다. TV를 통해 일부 공개된 북한군 방사포의 탄착 지점은 북한의 다음 도발에 좋은 정보가 될 것이다. 이것이 준(準)전시상태에 놓인 대한민국의 안이한 오늘 모습이다.

상임위원회 활동이나 국정감사를 통해 국가 안보 태세를 제대로 점검해 보강하도록 할 책임이 있는 국회의원들도 연평도 사태 직후 국회에 국방부 장관을 붙들어 놓고 오히려 사후 수습을 방해했다. 국회가 국방예산안의 적정성이나 군비증강 예산의 합리적 배분 여부를 꼼꼼히 심의했더라면 안보 상황이 지금처럼 참담하지는 않을 것이다.

남한 인구는 북한의 2배이고 1인당 국민소득은 18배, 무역총액은 200배, 수출은 340배에 이른다. 경제력이 곧 국방력을 의미하는 현대전에서 세계 15위권의 경제규모를 가진 우리가 북한의 도발에 번번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은 더는 용인될 수 없다. 그동안 무기체계나 성능면에서 북을 능가한다고 큰소리쳐 온 군에 대한 불신도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이 대통령은 군과 청와대, 국정원의 안보태세를 재구축하고 쇄신해 국민을 안심시키는 일에 명운을 걸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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