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전성인]현대건설 인수에 의혹 없길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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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의 매각이 난항을 겪고 있다. 통상적인 경우라면 이미 상황은 사실상 종료되었어야 했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런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름도 제대로 들어보지 못했던 프랑스의 한 은행에 예치된 1조2000억 원이 상황을 꼬이게 만들었다. 이 돈이 국내 기업의 인수에 동원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기자금’인지가 핵심 쟁점으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입찰에 참여했던 기업들은 명예훼손 소송으로 연장전을 치르고, 정치권까지 나서서 채권단과 정책당국을 압박하고 있다.

사안이 재벌기업의 경영권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이 싸움은 쉽게 끝나기 어렵게 되었다. 싸움을 어떻게 벌일지는 입찰 참가자들의 선택이다. 그러나 이 싸움을 평가하고 통제하는 시각은 사회적인 것이어야 한다. 경기규칙은 언제나 공정하고 사회의 일반적 가치기준에 부합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기규칙과 관련된 주체로는 채권단과 정책당국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우선 채권단은 채권은행 간의 공평한 채무보전과 회수를 위해 일정한 한도 내에서 공정하게 매각협상을 진행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채권단 내부에서의 공평’일 뿐이다. 채무자와의 관계에서 채권단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회수이익 극대화이다. 이는 나아가 채권단의 주주에 대한 의무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1조2000억 원의 성격과 관련하여 채권단에 이런 저런 주문을 하는 것은 제대로 된 경기규칙이 아니다. 채권단은 가능한 한 많은 돈을 챙겨서 빨리 이 부담을 떨치는 것이 최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책당국의 견해는 다르다. 정책당국의 목표는 이 매각 과정에서 누구도 선의의 피해를 보지 않도록 통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은행에 예치된 1조2000억 원의 성격을 규명해야 할 정책당국의 책임은 바로 이런 목표에서 연유한다.

필자가 미국에서 파산법 강의를 청강할 때 제일 첫 시간에 배운 것이 차입자금에 의한 기업인수(LBO)의 문제점이었다. 초창기 차입인수의 경우 은행은 잠재적인 인수자에게 고리의 자금을 대출해 주고 그 대가로 기업 자산을 담보로 잡는다. 이 돈으로 인수자는 대주주에게 두둑한 가격으로 주식을 사서 회사 경영권을 차지한 후 적당히 국물을 우려내고는 탈출한다. 그 빈 자리에 은행이 들어와서 담보를 처분하여 대출금을 회수한다.

이 구조는 적어도 이들에게는 꿩 먹고 알 먹는 횡재다. 대주주는 비싼 가격에 주식을 팔아치우고 떠나고, 인수자는 자기 돈 한 푼 없이 국물을 먹고 떠나고, 은행은 짭짤한 이자수익을 챙기고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경제에 공짜 점심은 없으니 이 모든 이익은 다른 사람의 손실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들이 누구인가. 매각 대상 기업의 무담보 채권자와 소액주주들이다. 이들은 연극이 끝나고 난 뒤 껍데기만 남은 텅 빈 회사를 바라보는 것 외에 할 일이 없다.

차입인수가 규제의 틀 속으로 들어오게 된 데에는 바로 이런 불공정함이 자리하고 있다. 경영대학원 나온 사람들이 멋있게 양복 차려 입고 차입인수를 선진 금융기법이라고 아무리 우겨도, 이해당사자 간의 공평한 이익배분이 입증되지 않는 한 정책당국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어서는 안 된다.

현대건설의 매각과 관련하여 프랑스 은행에 예치된 1조2000억 원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돈이 차입자금이라면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담보 또는 그와 유사한 재무적 부담이 현대건설 또는 인수자의 통제하에 있는 또 다른 기업을 압박할 수 있으며 이 경우 부당하게 관련회사의 무담보 채권자나 소액주주가 손실을 볼 수 있다. 물론 필자는 이번 입찰의 승자가 이런 나쁜 일을 꾸미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개연성은 완전히 제거되지 않고 있으며 잠재적 피해자의 목소리는 이 매각 과정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

오늘은 양해각서 체결의 마감 날이다. 승자와 채권단이 어떤 의사결정을 하건 정책당국은 이 과정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을 명심하고 매각이 모두에게 공평한 결과를 가져오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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