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최영해]오바마와 한미 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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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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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이 서울에서 큰 망신을 당하고 왔다. 내가 야당이지만 대통령이 외국에서 망신당하는 것은 참기 어렵다.”

미 공화당 소속의 한 하원의원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주요 20개국(G20) 서울정상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타결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귀국하자 이같이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에게 한미 FTA는 이번 아시아 순방에서 가장 큰 숙제였다. 자신이 일찌감치 협상시한을 못 박은 데다 든든한 동맹관계인 한국으로부터 화답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결과는 ‘낭패’였다. 미외교협회(CFR) 회장은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은 아시아 순방의 최대 실패작”이라고 혹평했다. 한미 FTA가 불발에 그친 것을 겨냥한 말이다.

2일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 참패한 오바마 대통령이 선거가 끝나자마자 아시아 4개국을 순방한 것은 미국의 일자리 때문이었다. 집권한 지 2년 동안 갖가지 개혁을 밀어붙였지만 정작 일자리를 잃어버린 미국인은 대통령을 신임하지 않았다. 인도와 인도네시아에서 수출 확대 및 자원외교에 성공한 오바마 대통령은 정작 한국에서 FTA를 성사하지 못한 채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시아 순방길에 오른 직후인 6일 뉴욕타임스 오피니언면에 낸 기고문에서 “한국 방문 중 이명박 대통령과 수백억 달러의 수출을 늘리고 수천 개의 일자리를 창출해낼 수 있는 FTA의 타결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고문에서 아시아 4개 순방 국가의 대통령 이름을 거명한 것은 이 대통령뿐이었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한미관계가 끈끈한 동맹이 맞느냐”는 얘기도 들린다. 중간선거 참패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아시아 순방으로 정국 반전을 도모했던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정국 주도의 추동력을 잃었다. 대통령의 ‘빈손’ 귀국에 미국 여론은 싸늘했다. 미 언론은 오바마 대통령의 리더십 부재를 질타했고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에서도 비난받고 있다. 한 방송에서는 한미 FTA 타결 실패 후 6·25전쟁 때 전사한 미군 수와 주한미군 병력을 거론하면서 한미 동맹에 회의를 품는 보도를 하기도 했다.

지난해 미국에서 팔린 한국산 자동차는 47만 대, 한국에서 판매된 미국산 자동차는 6000대다. 고객이 선호하는 물건을 내놓지 못한 건 물론 미국 책임이다. 하지만 ‘47만 대(對) 6000’이라는 숫자를 보는 미국의 속내는 어떨까. 논란이 된 자동차 안전기준과 관세 문제는 앞으로 협상테이블에 올려질 것이다.

문제는 명분과 곁가지에 집착하는 바람에 한미동맹을 금 가게 하고 한미 FTA를 원점으로 되돌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미국시장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은 소탐대실(小貪大失)이다. 그렇게 잘나가던 도요타자동차가 미국시장에서 한순간에 추락한 것은 단순한 경제논리만이 아니라 정치적인 판단과 무관하지 않다.

멕시코가 1995년 외환위기에서 6개월 만에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라는 미국시장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보호막’이 있었기 때문이다. 잘나가는 한국자동차가 미 의회에서 도요타자동차 사례처럼 ‘어디 한번 걸리기만 해봐라’는 표적이 돼서는 안 된다. 한국의 14배 시장인 미국과 FTA를 하지 않는 것은 한국에 손해인 것은 분명하다. G20 서울 정상회의가 한국의 명성을 높인 축제였다면 한미 FTA는 수십 년 만에 찾아온 실전 비즈니스 기회다.

최영해 워싱턴 특파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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