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철호]배추 파동 교훈삼아 식량위기 대비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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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배추 파동으로 나라가 한동안 떠들썩했다. 이번 문제는 기후변화로 앞으로 닥칠 식량위기의 단면을 미리 보여주는 징후라고 생각해야 한다.

나는 광릉수목원 옆에 작은 농장을 갖고 있다. 예년 같으면 330여 m²(100여 평)의 밭고랑에 노란 속이 맺힌 배추가 꽉 차 있어야 할 텐데 금년에는 속 없는 작은 배춧잎이 듬성듬성 보인다. 8월 말 배추씨를 파종할 시기에 계속해서 비가 왔고 습한 기후에 벌레가 창궐하여 배추 싹을 모조리 잘라 먹었다. 두 번이나 모종을 사다 다시 심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김장배추는 파종 시기를 놓치면 무슨 수를 써도 제대로 된 배추를 수확할 수 없다. 기후변화의 작은 차이가 이같이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대홍수와 가뭄이 수시로 일어난다. 지난 15년간 지구의 평균온도는 0.7도가량 높아졌는데 한국은 이보다 더 빠르게 온난화 현상이 나타났다.

21세기에 지구의 평균온도는 섭씨 5도 이상 상승할 것으로 예측된다. 평균온도가 1도 올라가면 해수면은 10∼15m 상승한다. 온난화가 진행되면 지금 우리가 보는 엘니뇨현상보다 더 심각한 기상변화가 온다. 2050년에는 지구 인구가 지금의 1.5배인 90억 명 수준으로 증가하는데 지구의 먹을거리 생산량은 현재보다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각국은 이에 대비해 자국의 식량자급률을 높이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자국에서 생산하는 식량을 함부로 수출하지 못하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식량 수입국으로 변하여 일부 곡물 수출을 제한하고 있다. 러시아도 금년 밀 수출을 동결했다. 앞으로 이런 일은 수시로 일어날 것이다.

우리는 쌀이 남아돈다고 한다. 쌀은 곧 식량이라는 인식을 가진 우리 국민은 식량이 남아도는 국가로 착각한다. 1970년대에는 국민 1인당 연 130kg의 쌀을 먹었는데 지금은 연 70kg을 먹는다. 그래서 쌀은 전체 식량의 30%밖에 기여하지 않는다. 우리가 먹는 밀의 전량, 옥수수의 전량, 콩의 80% 이상을 외국에서 수입한다. 외국에서 밀을 사올 수 없어 빵과 국수를 먹을 수 없는 상황을 생각해 보라. 배추파동은 이러한 시대를 알리는 서막으로 보아야 한다.

한국과 대단히 비슷한 처지의 일본은 우루과이 협상을 시작하던 1980년대부터 식량 증산과 식량 확보를 위한 정책을 꾸준히 폈다. 식량에너지 자급률을 지금의 40% 수준에서 2015년에는 45%로 늘려 잡았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식량 문제에 대한 정확한 실상을 국민에게 알리고 앞으로 닥칠 식량위기를 대비하는 국가적 노력이 필요한 때다.

이철호 고려대 명예교수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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