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프랑스 보유 외규장각 도서, 대여 아닌 반환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29일 03시 00분


프랑스가 보유하고 있는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 문제를 놓고 프랑스 정부와 협의해온 우리 정부가 ‘갱신(更新) 가능한 대여’라는 프랑스 측 제의를 수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갱신 가능한 대여’는 도서를 일단 돌려받은 뒤 3년 또는 5년마다 다시 대여 절차를 밟아 한국이 계속 보유해 나가는 방식이다. 우리 측은 협상 초기에 ‘반환’을 요구했으나 이후 ‘영구 대여’로 한걸음 물러섰고 프랑스 측이 이마저도 받아들이지 않자 ‘갱신 대여’라도 수용하려 하고 있다.

프랑스 측은 ‘영구 대여’가 프랑스 국내법에 저촉된다면서 난색을 표시해 왔다. 우리 정부도 11월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간에 예정된 한-프랑스 정상회담이라는 기회를 살려 일단 책을 받아놓는 것이 실리적이라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그러나 ‘반환’ 아닌 ‘대여’ 방식은 옳지 않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에게 이집트 고분벽화 한 점을 돌려줬다. 해당 벽화는 형식상으로는 프랑스가 돈을 주고 구입했던 것이다. 외규장각 도서는 프랑스 군대가 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도에서 약탈해간 것으로 이집트 고분벽화보다 유출 경위 면에서 더 악질적이다. 빼앗긴 우리 문화재를 당당히 반환받지 못하고 몇 년마다 대여를 갱신해 나가는 것은 프랑스의 합법적 소유권을 인정해주는 셈이다. 주권국가의 자존에 관한 문제다. 프랑스가 제시한 ‘갱신 가능한 대여’라는 방식은 나중에 외규장각 도서를 프랑스로 다시 가져갈 수도 있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향후 일본과의 약탈문화재 반환 협상에도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

1993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에게 외규장각 도서 297책 가운데 한 권만 반환했다. 이후 약속과는 달리 나머지 책이 반환되지 않자 당시 프랑스 고속철인 TGV를 한국에 판매하기 위한 정치적 쇼였다는 비판이 고조돼 두 나라 관계에 걸림돌로 작용해 왔다.

정부는 ‘반환’을 원칙으로 협상을 진행해야 옳다. 우리가 양보하더라도 사실상 ‘반환’의 효과가 보장되는 명백한 문구가 합의문 안에 들어가도록 해야 한다. 프랑스가 국내법을 핑계 대며 우방국의 자존심을 희롱하는 것은 그들이 내세우는 ‘문화대국’에 걸맞지 않은 부끄러운 행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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