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서영아] 낚시질과 독자의 신뢰

  • Array
  • 입력 2010년 10월 22일 03시 00분


코멘트
직무상 종일 인터넷을 들여다보지만, 한국의 언론사닷컴 사이트를 보면 짜증부터 날 때가 적지 않다. 독자가 얻고자 하는 콘텐츠와는 무관한, 살냄새 가득한 화보와 광고들 탓이다. 짤막한 연예기사에 선정적 화보가 수십 개씩 붙고 피부과니 성형외과, 다이어트 광고들이 스크롤바를 따라다니며 독자들의 시선을 방해한다.

‘이거 너무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종종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쪽 세계를 좀 안다 하는 사람이라면 ‘오죽하면 그렇겠느냐’며 논쟁을 피하는 게 지금까지의 정답이다. ‘인터넷 뉴스는 공짜’라는 인식이 정착한 환경에서 화보나 광고에 대해 시비를 거는 것은 일종의 금기이기 때문. 콘텐츠를 만들고 유지하려면 한 푼이라도 벌어야 한다는 현실논리다. 그리고 트래픽이 늘어야만 수익도 올라간다면 낚시성 기사나 화보가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못내 의구심은 남는다. 해외 언론사 사이트는 안 그렇던데 왜 한국만? 내가 광고주라면 저질 광고들 옆에 고급 광고를 낼 마음이 들까? 나아가 혹 언론사들은 당장의 한 푼 때문에 더 귀중한 자사 브랜드를 훼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러는 중 최근 해외 온·오프라인 신문 현황을 취재하러 온 일본 아사히닷컴 편집자에게서 흥미로운 얘길 들었다.

2년 전 아사히신문과 니혼게이자이신문 2개사는 일본 포털 53%의 점유율을 자랑하는 야후저팬에 뉴스 공급을 중단했다. 트래픽은 급감했고, 신문사 중 2위권이던 아사히닷컴은 닛케이닷넷과 함께 4∼5위군으로 추락했다. ‘트래픽=광고수입’이란 공식에 따르자면 아사히닷컴의 광고수입은 형편없이 줄어야 한다.

놀라운 것은 광고시장의 반응. 이들 사이트의 광고단가는 한 푼도 떨어지지 않았다. 포털을 통해 우연히 들어온 독자보다 일부러 아사히닷컴 혹은, 닛케이닷넷을 찾아와준 독자들의 질이나 매체충성도가 높다고 시장에서 인정하기 때문이란다.

한국의 현실과 비교하면 이건 확연한 발상의 전환, 그것도 양(量)에서 질(質)로의 전환이다. 아사히는 여기에 더해서 기사 유료화 실험을 비롯해 모바일서비스, 전자책, 기사 데이터베이스(DB) 등에서 새 수입원을 개척하기 위해 열심이었다. 모두가 콘텐츠의 힘으로 수익을 내보자는 전략이다.

유사한 흐름은 6일부터 3일간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제17차 세계편집인포럼(WEF)에서도 감지됐다. 참석자들이 트위터를 통해 생중계해준 덕에 들여다본 이 행사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단어는 ‘퀄리티 저널리즘’, ‘페이월(paywall·지불장벽)’, 그리고 태블릿이었다.

참석자들은 ‘인터넷뉴스=무료’라는 인식을 심어준 언론사들의 초기 대응을 빗대 “신문사들은 웹에서 했던 실수를 반복해선 안 된다”고 반성하거나 “아이패드 등 태블릿PC를 활용해서 퀄리티 저널리즘을 유료화해 살려내야 한다”는 주장들을 펼쳤다. “아이패드=아이페이(ipay)”나 “유료독자를 위해 더 많은 것을 생산하라”는 캐치프레이즈도 나왔다. 뉴욕타임스 최고경영자(CEO)도 퀄리티 저널리즘을 강조하며 내년 초 콘텐츠를 유료화하겠다고 밝혀 주목의 대상이 됐다.

아사히신문이건 세계편집인포럼이건 세계 언론사들의 미래 궤도는 낚시질과는 상당히 다른 방향인 듯하다. 이들은 질 높은 콘텐츠를 살려내 수익으로 연결하려 하고, 이를 위한 효율적인 유통구조를 고민하고 있었다. 다시금 떠오르는 생각. 한국에서도 신문브랜드는 오랜 세월에 걸친 독자의 신뢰 위에 세워져 있다. 반면 낚시는 두 번 다시 보지 않을 사이에나 쓸 수 있는 편법이다.

서영아 인터넷뉴스팀장 sy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