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태광 비리 이면에 도사린 ‘公的부패’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20일 03시 00분


태광그룹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케이블TV 방송권역을 넓히고, 2006년에는 다른 기업이 인수에 실패한 쌍용화재를 사들였다. 국세청은 2007년 태광그룹 세무조사에서 1600억 원대의 비자금을 발견하고도 검찰에 고발하지 않았다. 태광그룹이 조성한 비자금의 상당액이 정계, 관계에 로비자금으로 쓰였을 가능성이 있다. 김준규 검찰총장이 그제 국회 법사위에서 태광그룹의 비자금 실체를 밝히겠다고 한 답변을 주목하는 이유다.

검찰은 우선 태광그룹이 방송법 시행령 개정 과정에서 방송통신위원회와 청와대를 상대로 로비를 벌였는지 규명해야 한다. 유선방송사업자(SO)인 태광그룹 계열사 티브로드는 2006년 SO인 큐릭스 인수를 계획하면서 당시 방송법 시행령의 독점방지 조항(전국 77개 권역 중 15개 권역 초과겸영 금지)을 피하기 위해 큐릭스 지분 30%를 군인공제회 등이 우회 매입하도록 했다. 당시 티브로드는 15개, 큐릭스는 7개 권역을 겸영했다.

2008년 12월 방송법 시행령이 개정돼 25개 권역 겸영이 가능해지자 티브로드는 큐릭스 지분 70%를 인수했다. 2009년 5월에는 방통위로부터 큐릭스 인수를 승인 받아 업계 1위를 굳혔다. 2009년 3월에는 티브로드 간부가 청와대 김모, 장모 행정관과 방통위 신모 과장에게 향응과 일부 성 접대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태광그룹의 큐릭스 인수를 놓고 케이블TV 업계에서는 ‘성공한 로비’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검찰이 그제 서울지방국세청을 압수수색한 것은 태광그룹의 세무조사 로비 의혹이 짙다는 의미다. 국세청은 2007년 태광그룹의 세금 포탈 혐의를 적발해 2008년 상속세 790억 원을 추징했으나 검찰에 고발하지 않았다. 금융감독원은 2005년 12월 STX의 쌍용화재 인수에 제동을 걸었으나 2주 만인 2006년 1월 태광산업에는 허용했다. 금감원은 “주주들의 입장을 반영한 결정”이라고 밝혔지만 의심스러운 구석이 적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직사회의 부정에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8월 김 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는 자리에서도 “어떤 경우에도 권력형 비리와 공직부패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자세로 처리해 달라”고 말했다. 검찰은 대통령 주문이 없었더라도 엄정하게 수사해야 옳다. 기업의 비자금 로비는 공적(公的) 부패를 조장하고 공정한 경쟁과 시장 질서를 파괴한다.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 앞에서 위축되지 말고 철저히 파헤쳐 후진국형 부패 사슬을 끊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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